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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흙.바람 +나
2022. 6. 13. 본문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 "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다가 끝인사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둘이 밥 먹을 생각은 아예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그냥 지나가는 인사일 뿐이다. 밥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특히나 가족 사이에서 밥은 매우, 아주 중요한 무엇이 된다.
"밥은 먹었어?"
"식사하셨어요?"
"밥은 먹고 다니니?"
"식사 잘 챙겨 드세요."
그런 인사를 서로 주고받고 나면 다른 무엇도 능가할 수 없는 끈끈한 관계의 이어짐이 느껴진다. 나의 대화 상대가 밥때를 놓쳐서 배가 고픈 것이 걱정인 것을 넘어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염려를 포함하는 말이 "밥" 안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2년 전쯤에 무릎 인공 관절 수술을 한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오래 병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병원에 며칠을 있다 보면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할머니가 있다. 그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데다 허리 관절도 아파서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치매에 걸린 그 할머니는 손자들을 밥 먹여 학교 보내던 그 시절에서 기억이 멈춘 듯했다. 아침 7시, 저녁 7시경이면 어김없이 소리를 지른다.
"00야, 밥 먹어라~" 아침에는 거기에 덧붙여 "00야, 밥 먹어라. 학교 가야지." "학교 가야지"가 더 붙었다. 밥을 먹이는 일이 자식을 넘어 손자에게까지 이어질 동안이 아마도 5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할머니에게는 누군가에게 밥을 먹이는 일이 자신의 업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해거름이 되면 가끔 그 할머니의 "00야, 밥 먹어라."가 생각난다.
내 엄마도 다르지 않다. 전화해도, 만나도 "밥은 먹었냐?"부터 묻는다. 나도 그렇다. 내 가족이 밖에서 돌아오면 "밥은 먹었어?"를 먼저 묻는다. 밥은 엄마에게서 엄마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마트에 가서 냉동식품 매장을 보면 '저런 음식도 냉동식품으로 나오네?'라고 생각되는 음식도 많다. 메밀부침, 감자만두, 핫도그, 떡갈비, 에지 피자 등등 온갖 음식들이 즐비하다. 거기에 더해서 모든 재료가 준비된 밀키트 판매점도 부쩍 늘었다. 각종 요리 재료를 구입하는 것보다 세트로 만들어 놓은 박스를 구입해서 조리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밀 키트 (meal kit)는 meal(식사) + kit(키트, 세트)라는 뜻의 식사 키트라는 의미로 쿠킹 박스, 레시피 박스라고도 불리며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과 조금 다른 개념이다. 밀키트란 손질된 식재료와 믹스된 소스를 이용해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식사 키트이며, 최근 유명 셰프들의 레시피로 제공되는 meal kit도 있다. -위키백과-
다양한 밀키트, 냉동식품이 많아지면서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집밥을 만드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같은 도시들은 저녁식사를 외식으로 하면서 외식 예약 문화가 필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져 온 질긴 생명줄 같은 '밥' 문화와 '밥 한번 먹자'의 인간관계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 다 달라져도 "00야, 밥 먹어라."의 사랑이 담긴 '밥'문화는 바뀌지 않았으면 싶다. 치매 할머니의 '밥 먹어라.'는 밥이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고, 삶의 기본임을 의미한다. 생명을 살리는 '밥', 영혼을 살리는 '밥'이 편리함에 밀리지 않았으면 싶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밥은 멀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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