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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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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22.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5. 22. 21:14

  일요일이라 맨발걷기 좋은 융릉과 건릉의 주위로 난 소나무 산책길을 걸었다.  물론 맨발로 걸었다.  융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세자(훗날 장조로 추존) 부부가 잘들어 있는 곳이다.  건릉은 아들 정조부부가 감들어 있는 곳이다. 사도세자는 27년을 살았고, 혜경궁 홍씨는 80년을 살았다.  정조는 34년을 살았고, 효의왕후는 68년을 살았다. 

   융릉은 동쪽에 건릉은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우리는 융릉 앞 홍살문이 보이는 곳에서 홍살문과 정자각을 보고 그 뒤로 보이는 융릉을 보았다.  홍살문과 정자(正)각과 능이 한일(一)자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지 않고 홍살문과 정자각은 나란히 있는 반면 능은 동쪽으로 살짝 더 이동한 자리에 있다. 뒤주 속에서 돌아간 사도세자가 정자각에 가려 앞이 안 보이면 얼마나 답답할까를 고민한 정조가 그렇게 배치하였다고 한다. 

 

   융릉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융릉과 건을을 둘러싸고 둘레길을 걷는 셈이 된다. 양쪽으로 소나무가 시원하게 뻗어올라 있고, 소나무 사이 사이로 요즘 한창인 때죽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때죽나무 꽃향기가 바람이 불 때마다 코에 와 닿는다. 실외 마스크를 해제한 이후 이렇게 산책길에서 나무와 꽃과 새들의 노랫소리까지도 들으면서 걸으니 새삼스럽게 자유의 기쁨이 느껴진다. 

 

 맨발로 걷다보니 이즈음에 비가 내리지 않은 봄가뭄이 계속된지라 흙이 보드라운 흙먼지로 변하여 풀썩 풀썩 하고 흙먼지를 일으킨다. 대신 발에 와 닿은 감촉은 보드랍고 발에는 이미 먼지가 하얗게 올라 앉았다. 건릉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물을 뿌려놓았는지 흙바닥이 단단하고 먼지가 없다. 돌하나 없이 매끈하게 흙으로 다져진 길이라 맨발걷기로는 아주 좋은 조건인 길이었다. 맨발걷기 좋은 길이란 바닥에 흙만 있고, 단단하게 다져져서 먼지가 나지 않은 길이다. 자갈이나 돌부리가 있으면 발바닥을 자극하여 보폭을 줄이고, 발 아래를 살피면서 걷게 되니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져 평소의 1/2수준으로 느려진다. 그렇게 느려지는 길은 융릉과 건릉을 내려가 보는 위치에 있는 길이다. 실제로는 나무가 많아서 두 릉을 내려다 볼 수는 없지만 위치가 그렇다는 말이다. 

 

 길 주변은 소나무로 잘 가꾸어져 있고, 융릉과 건릉의 주변에는 너른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가족 단위로 와서 쉬는 사람도 보인다. 소나무 아래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 쉬어도 손색이 없을 천연 그늘이 펼쳐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해진 곳이라 그런지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고 깨끗한 길이라서 도심에 가까운 곳에서 깊은 산 속의 자연을 체험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융릉과 건릉의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올라가는 길에 보니 화장실 안에 음료수를 마시고 남은 컵, 음료수병들이 여러 개 놓여 있는 걸 보았다. 거기에 " 음료수 컵은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라는 문구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6개의 컵이 버젓이 있었다. 

 내려오던 길에 혹시 화장실 안에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다시 화장실에 들렀으나 발을 씼을 수 있는 시설은 없었다. 다시 돌아 나오려는데 아이가 묻는다. 

"엄마, 왜 그걸 발로 눌러?"

"응, 세게 눌러야 물이 잘 나와."

"???"

뭘까? 뭘 세게 눌러야 물이 잘 나올까?

엄마는 변기 뒤쪽에 있는 물 내리는 장치(레버)를 손으로 누르지 않고 발로 눌었다는 말인가?

그걸 발로 눌러야 물이 잘 나오던가?

 

 아이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일은 아이가 알기에도 잘못된 방법임에 틀림없다. 변기 레버가 더럽다고 생각하여 발로 눌렀단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그 레버를 누르는 사람은 앞 사람이 발로 밟아서 눌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만약 앞 사람이 발로 눌렀던 사실을 안다면 그 사람도 발로 누르고 싶지 않을까? 아니 혹시 그 엄마 이전의 사람도 발로 레버를 눌렀을까? 

 

  그 엄마는 화장실 앞에서 아들과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엄마 제발 집에 가서 피자 먹으면 안되요?"

"안돼! 내가 네 속을 모를 줄 알아? 너 집에 가서 게임하면서 피자 씹을 거잖아. 그렇게 못해. 밖에서 저녁 먹고 걷고 들어갈거야. 네 맘대로는 안돼."

대충 이런 말이었다. 그런 엄마가 화장실 안에서는 손으로 물내리라고 바닥에서 50센티도 넘게 높이 설치된 물내리는 장치(레버)를 발을 들어올려 신발신은 발로 눌러서 물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손이 더러워질까 봐. 

 

 부모가 자식이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아이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안돼!"를 연신 말하는 엄마를 바라보는 첫째 아이, 손으로 내리라고 만들어 놓은 레바를 발로 눌러 끄는 엄마를 본  둘째 아이 모두 답답한 마음은 마찬가지리라. 그래서 부모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어른이 어려운 법이다. 행동으로보여주어야 하니까. 말로 배우지 않고 행동으로 배우는 아이들이라서 키우기가 어렵다. 

 

   융릉을 짓고 정조는 12번이 넘게 아버지의 묘를 찾았다고 한다. 죽은 아버지를 잊지 않고, 효를 다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정조가 세종 다음으로 훌륭한 임금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식이 부모를 기리는 마음과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마음은 다를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을 잇는다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이다. 융릉과 건릉을 다녀 나오면서 나는 화장실에서 모녀의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그 대화가 나를 깨우치게 한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마음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마음을 잇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 아쉬운 것은 융릉의 곤신지는 본래의 네모난 연못 형태가 아닌 둥근 형태로 만들어져 물의 기운을 담고 있었으나 건릉의 천년지는 수유실 옆에 있다는 지도와는 달리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돌아 나오면서 매표소에 물었으나 매표소의 나이 지긋한 분도 모른다, 나는 본 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라서 아쉬웠다. 돌아와서 찾아봐도 천년지를 찍어 올린 사람은 없다. 아마 복원이 필요한 부분인가 보다. 문화재청에 알아봐야할 숙제가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