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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말하기를 배우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1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5. 18. 22:04

자유의지

 떼로 몰려다는 것,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닌 거야.  존재했어?-167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168

길 잃은 양이 된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예술가는 어떤 사람인가?

 

새 알바트로스는 날개가 일이 미터는 되는 큰 새로 하늘을 날 때는 눈부시지만 땅에 내려오면 중심을 못 잡고 기우뚱거린다.  사람이 와도 도망 못 가고 바로 잡혀서 바보새라고 부른다. 예술가가 바로 알바트로스다. 보들레르. 이상처럼 . 그들은 알바트로스에서 자기를 본 사람들이지. 

이 세상에 영웅은 없지만 영웅이 있다고 생각하면 '용자'가 나타나는 것처럼 현자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현자의 문화를 만드는 것처럼. 반쪽 날개로라도 날아보려고 소설을 쓰고,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하는 자들이 예술가라네.

 

신념

  신념처럼 위험한 게 없다. 나치 신념을 가진 사람이 8백만명 유태인을 죽였다. 관념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인간사인데 예쓰와 노우 만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메이비 maybe를 허용해야 한다. maybe가 가장 아름답다고 포크너가 그랬잖아. maybe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거야. 

 

  신념에 기대하는 건 시간낭비다. 말 그대로 거짓이다. 신념 속에 빠져 거짓 휴직을 취하지 말고 변화무쌍한 진짜 세계로 나와야 한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인생 프로세스를 생략한 사람이다. 목표만 완성하면 끝이다. 돈이 신념이다. 백만장자가 되면 끝인가? 그 다음은? 그러니 프로세스, 집이 아니라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살게. 꿈이라는 것은 꿈 자체에 있다. 꿈을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걸 지속하는 거다. 꿈 깨면 죽는 거다.

나름의 기준으로 화문석을 짤 것인가?

노예의 삶처럼 무문석을 짤 것인가?

 

창조

창조는 카오스에서 생긴다. 질서에서는 안 생기지, 질서는 이미 죽은 거다. 카오스(혼돈)을 불안의 흑점이 아니라 창조의 밝은 점으로 바라본다. 혼돈은 호기심 덩어리다. 좀 까칠하고 불만도 많고 빨리 걷는다. 원하는 거 줘도 금방 딴 거 할 사람들은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다. 갈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린다는 건 비워야 채워지는 원리다. 

반면,  물독처럼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 남들을 따라하는 돌멩이 같은 사람들은 속이 가득 차 있다.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

트로이 전쟁에 나가는 연합군 중 한 사람인 필록테테스라는 왕이 있었다. 신전에서 독사에 물려 악취가 심하게 나자 홀로 램노스섬에 버려졌다.  그는 고통 속에서 10년을 보냈다. 신탁에서 말하기를 "아킬레스 같은 영웅이 있어도 못 이긴다. 이기려면 헤라클레스의 활(아폴론 신궁)이 필요하다."라고 나왔다. 그러나 그 활은 필록테테스가 가지고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목으로 죽어갈 때 '육체의 고통을 이겨야지. 이 독에 질 수 없다. 나를 태우라.'라고 명령했지만 아무도 하지 않자 '나에게 불 지르는 자에게 아폴론 신궁을 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때 필록테테스가 불을 지르고 아폴론의 신궁을 받게 된 것이다.  활을 훔치려고 전략가인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가 램노스섬에 갔다.그들은 "활을 훔치러 왔지만 당신을 예 두고 활만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활은 당신의 상처이고 상처는 당신의 활입니다. 상처와 활이 하나가 됐을 때 전쟁이 끝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필록테테스는 자신을 버린 미니족과 동지를 용서했고,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미국의 힘은 카오스의 허용에 있다.

유럽에서 창녀, 깡매, 죄수를 전부 배에 태워 미국으로 쓸어 보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사람들로 살아가면 그게 건전한 사회인가?  미국은 그런 쓰레기 취급받던 인간들이 함께 모여 성장해 갔다.  상처와 활을 동시에 가졌기에 신대륙에서 새로운 종교, 정치, 문화가 끓어오를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표본이지만 또 선거 때마다 가장 꼴통 짓 하는 게 미국이다.

그러나 그게 미국의 힘이고 희망이다. 

그 엉망진창이 어마어마한 힘이다. 

다양성의 힘, 카오스를 허용한 사회의 에너지다.

 

통제사회, 무균사회는 상처를 포용할 힘이 없다.

너의 치유, 나의 치유를 나눌 수 있는 타자가 없다.

내가 없다.

전부 타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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