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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황현산<밤이 선생이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8. 5. 16:30

 

  저자 황현산선생은 문학평론가, 불문과 교수로 활동하였다.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저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잘 표현된 불행>,<말과 시간의 깊이> 등의 작품과 <악의꽃>,<파리의 우울>,<말도로르의 노래>,<어린왕자>등의 번역 작품이 있다.

 

책의 제목이 지혜롭다. <밤이 선생이다>는 얼마나 지혜로운가?

어제 저녁 밤 산책을 하면서 생각해 본다. 낮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밤에 거리를 걸어본 사람은 안다. 강물은 검게 변하고, 늘어진 수양버들은 한껏 흐드러지며, 낮보다 더 강하게 연꽃의 향이 그득하다.  밤의 사색에서 우리가 얼마나 배우고 겸손해지는 지를 발견하는 시간이 즐겁다.

 

 이 책은 문학비평이나 번역이 아닌 저자의 글로 2000년대 초 신문에 실린 칼럼, 1980년, 1990년대에 썼던 글을 묶어서 낸 책으로 삼십여 년에 걸쳐 쓴 글이지만, 어조와 문체에 크게 변함이 없고, 이제나저제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P.4)을 발견하고 신기하다는 표현은 저자의 서문처럼 줄곧 같은 어조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1부는 2010~2012년에 쓴 글이다.  시대를 반영한다. 교육, 역사, 문화에 관한 글이다.

2부는 사진을 보고 쓴 5편의 글이다.  황현산 작가의 뛰어난 호기심, 관찰력, 표현력을 볼 수 있다.

3부는 1980~2009까지의 글을 모은 글이다.  성찰과 물음이 있는 글이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로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P.5)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가 너무 악착스럽고, 미래에의 걱정은 갈수록 두터워질 뿐이다. 그래서 현재는 그만큼 줄어들고 눈앞의 삶을 깊이있게 누리는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김연아가 대학생이 되려면(P.42)

 

이 유례없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독립운동 하듯이-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의무(P.52)

 

  올 초에 목포여행을 갔다가 삼학도를 가 봤지만 그 근처에 섬은 없었다. 네비게이션으로 몇 번을 같은 지점을 돌다가 포기하고 왔는데 이유가 있었다.  썰물일 때 육지와 갯벌로 이어지던 곳을 둑을 쌓아 민가와 상가가 들어섰지만 이제는 삼학도와 간척지 사이에 물길을 내고 옛 삼학도를 복원하려 하고 있다는 이야기(55-57P) 끝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닌 일, 언제 어디에 소용될지 모르는 일에도 전념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학문의 위기고, 대학의 위기다. 생각을 생산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소비하는 일에만 매달릴 때 그 위기는 피할 수 없다. 삼학도의 비극은 그렇게 계속된다(2010)'

 

 가난했던 시절 연필 도둑을 찾아 체벌을 한 교사에게 학생이 했다는 말은 교육의 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히 부끄럽게 읽는다. "미역 갖다 줄게, 때리지 마세요. 김 갖다 줄게, 때리지 마세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생긴 학교는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대변되고, 정부의 교화정책을 도맡아 하면서 국민들에게 권위 있는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촌지나 체벌은 오랜 관행이었다. 이 글은 2010년에 써졌고, 지금 2021년은 촌지나 체벌은 벌써 오래 전에 없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전에 학교가 했던 '교육, 교화'의 역할에서 '보육, 돌봄'의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학교는 어떻게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도모할 것인가?'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체벌 없는 교실(2011)

 

2부는 저자의 관찰, 호기심, 매끄러운 글쓰기의 경지를 보여준다.  빈 집의 창호지 문을 잠근 빗장을 보고 쓴 글의 마무리를 보자.

'아니, 달리 말해야 한다. 덜 끔찍하다는 것은 사실 더 끔찍하다는 말이다. 봉천동의 마지막 작은 집이 허물어지고, 정릉의 고층 아파트들을 둘러싼 원주민촌이 이주를 마저 끝내기 전까지는, 저 빈집의 두터운 빗장이 다 삭기 전까지는, 우리가 제사상 앞에서 올리는 절이 아직 허망하지 않다. 그러나 없는 신에게 절을 하는 것보다 없어질 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 덜 끔찍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안은 슬픔보다 더 끔찍하다. -(172.p)

 

 현대 문명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살아있는 눈빛으로 형형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 (192.p)-유행과 사물의 감수성(2002)

 

 학문의 위기, 대학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교수들에 대한 시선도 날카롭다.

'교수의 직업이 공부하는 직업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일이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거나 영화를 만드는 일보다 덜 창조적이라고 할 수도 없고 위험을 덜 안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이 직업이 저 신랄한 야유 앞에 몸 둘 바를 몰라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지식 사회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근본적인 패배주의에서 찾아야 할 성싶다. '어느 세월에'라는 생각,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그 패배주의의 내용이다. 홍 감독의 영화<강원도의 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적어도 이 패배주의를 낱낱이 고발하는 방법을 깨쳤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2004)-홍상수와 교수들-

 

 저자는 1945년에 태어나 2018년에 별세한 분으로 우리나라의 대격변기를 몸으로 겪은 분이다. 그가 지성인으로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모습은 고스란히 그의 글에 실려 있다.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상상력 또는 비겁합>에서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것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 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에서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교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폭력에 대한 관심>에서

 

협객은 경공술로 날아가도 벼는 천천히 크고 천천히 익는다. 늙은 농부는 벼 크는 소리가 들린다는데, 그러고 보면 농부야말로 눈먼 무사 따위에 비할 수 없는 강호의 협객이다. <협객은 날아가고 벼는 익는다>에서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식탁 옆에 두고 열흘은 읽은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서 한 꼭지를 읽고, 잠자기 전에 한 꼭지를 읽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읽었다.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맛이다.

 

 이 책은 세상 이치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권한다. 밤 잠이 없어진 분들, 새벽에 눈이 일찍 떠진 어느 날 읽어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