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Tags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성형수술보다 더 인상을 좋게 만드는 비결
- 불안은 긍정적 감정으로 몰아내라
- 나쓰메소세키
- 불안이 몰려올 때
- 운명의해석 사주명리
- #백석 #나태주 #한국시 #문학비교 #서정시 #현대시 #위로 #감성문학
- 나는 좋은 사람이다
- 멈춰라 순간이여
- 왜우니 독서토론
- 우리 반 목소리 작은 애
- 리더
- 이가와 이토
- 최진석
- 서평
- 행복
- 채복기
- 평택시 한 책
- 용기
- 사진집
- 링컨하이웨이
- 오십에 읽는 주역
- 자유
- 안도균
- 헤어질 결심
- 인사이드아웃2
- 모스크바신사
- 나는고양이로소이다
- 교육
- 교육의 방향
Archives
- Today
- Total
물.불. 흙.바람 +나
[서평] 김사인<가만히 좋아하는> 본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하나 떨어져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 볼 길 밖에 없는 내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조용한 일> 시 전문-
이 시집을 알기 전에 위의 시 <조용한 일>이라는 시를 먼저 알았다. 그림같은 시다. 왠지 마땅치 않다는 건 날씨가 무덥고 마뜩치않아서 권태롭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뜨거운 여름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서 대지는 뜨거운데 해는 저물고 나무 아래 앉아서 낮에 쌓인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낮에 내내 더위에 시달렸으니 좀 쉬고 싶은 저녁이다. 바람 한 점이 그리운 저녁이다. 그 저녁에 낙엽이 한 잎 떨어진다. 떨어질 때도 아닌 나뭇잎이 철도 모르고 떨어진다. 그런다고 내가 어찌해 볼 도리가 있는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그런데 이 나뭇잎이 떨어져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 나의 고됨과 어찌할 수 없음을 아는 양 저대로 있으니 나는 저 나뭇잎이 옆에 있어서 고맙고, 가만히 있어줘서 고맙다.
김사인 시인의 시집<가만히 좋아하는>은 <밤에 쓰는 시집>에 이어 두번째로 낸 시집이다. 임우기님의 해설에 의하면 19년 만에 엮어내는 두 번째 시집이다. 또 시인의 말에 의하면 고 신동엽 시인의 그늘에서 2년 안에 쓰기로 한 시집을 19년 만에 내니 감회가 새롭다고 전한다.
임우기님은 해설에서 김사인 시인의 시를 보고 백석시인을 떠올린다. 작가마다 그림으로 표현되는 이미지가 있게 마련인데 김사인 시인의 시는 옹달샘에 물이 고이면 퍼 낼 수밖에 없듯이 가만 가만히 쌓이는 물과 같다.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꽃> 시 전문-
시인의 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신열을 앓는 치열한 삶 속에서도 '살아야지'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의 일을 이야기 한다. '일어나서 새끼들 밥 해 멕여 학교 보내야지'라고 하는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 보다 진솔하게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
사람 사는 일 그러하지요
한세월 저무는 일 그러하지요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저물녘 봄날 골목을
빈 손만 부비며 돌아옵니다. -<춘곤> 시 전문
'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 <공부> 시 전문-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고, 눈망울이 맑은 사람을 보는 듯 순수함이 그대로 보입니다. 봄에 보릿고개 넘기가 어려웠던 시절 빈손으로 돌아오는 마음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심정을 '빈 손'만 부비며 돌아오는' 으로 표현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그 안에 있다.
위의 시 <공부>는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에 실리지 않은 시이다. 아마도 이전 시집 <밤에 쓰는 편지>에 실린 작품인가 보다. 김사인 시인의 시 중 알려진 시다. ' 다 공부지요' 이 말에는 실망도, 한숨도, 실패에 대한 쓰라림도, 승리에 대한 오만도, 견디다 못해 내려놓는 체념도 다 들어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왜 어른들은 어른이면서 계절 하나 마음대로 못해서 이렇게 춥게 살고, 덥게 살까?'라는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예닐곱살 때였나 보다. 어른이 그만큼 커 보이고, 대단한 존재로 인식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안다. 오십이 넘은 나이가 되어보니 세상 이치가 보이고, 흘러가는 물을 막으면 안 되고, 부는 바람을 막으면 안 되고, 가는 사람을 잡으면 안 되고, 오는 사람을 막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어른들이 만약 계절을 어쩔 수 있었다 해도 손 대면 안되는 것 중 하나다. 여름날 뜨거운 땡볕이 있어야 맨드라미가 빨갛게 익어가고, 봉숭아 열매 코투리가 그 햇빛에 견디다 못해 툭! 하고 터질 수 있다는 걸 어른들은 안다. 김사인 시인도 그걸 알고,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시집은 맑은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찻집에 앉아 읽어도 좋은 시집이다.
코로나로 못 만난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 일찍 카페에 가서 읽고 싶은 시집이다.
인심 좋은 주지스님이 계신 절의 마루 한귀퉁이에 앉아서 바람이 살살 부는 날에 읽고 싶은 시집이다.
새벽에 일어나 앉아 커피를 앞에 두고 읽고 싶은 시집이다.
'서평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김진숙<소금꽃나무> (0) | 2021.08.18 |
---|---|
[서평]류시화<마음챙김 시> (0) | 2021.08.08 |
[서평]황현산<밤이 선생이다> (0) | 2021.08.05 |
[서평] 권혁웅<마징가 계보학> (0) | 2021.08.01 |
서평: 윤고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0) | 2021.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