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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김진숙<소금꽃나무>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8. 18. 00:10

 

김진숙......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으로 유명한 분이다.

이 책은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추천을 받았다.  나와 상관없는 노동자라고만 생각했던 그가 이런 책을 내다니? 하는 생각과 이런 감수성이 있는 이였나? 하는 생각, 내가 겪기 싫었던 일, 피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살았던 또다른 삶의 모습을 가진 이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김진숙은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다. 작가가 아니기에 이 책을 내기까지 출판사와의 오랜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물었다.

 

"당신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노동자다. 거북선을 만든 것도 노동자다.

노동자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김진숙님의 글을 읽으면 노동은 자연스럽고, 당당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조선소의 유일한 여성 용접사로 일하다가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해고되고, 그 뒤 20년을 해고자이자 노동운동가로 살아왔다. "일당이 좀 세서" 용접을 배웠고, "돈 벌어서 대학가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이었다.

 

  1300만명의 노동자 중에 860만명이 비정규직이라면, 나 아닌 누군가는 또다시 이 자릴 채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도 알았고, 부모님께도 친구들에게도 심지어는 자신에게도 남득시킬 수 없었던 날벼락 같던 해고 이유도 알게 됐다. 부모님으로부터도 선생님으로부터도 배울 수 없었던 진실이 있음을 알았고, 노동자는 저항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도 구르고 차이며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153p-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장을 떠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을 든 깡패입니다. -154p-

 

  구조조정의 끝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자본이 해야 할 말을 같은 노동자가 하게 되는 이 기가 막히는 상황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일 것입니다. (중략) 철도, 이랜드, 롯데호텔, 한국항공우주산업, 부산은행, KM&I 등 정규직이 연대한 비정규직 싸움은 다 승리했고, 그 승리는 정규직의 고용까지 담보했지만, 비정규직들끼리만 싸웠던 한국통신,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은 다 패배해 결국은 정규직도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내몰려야 했습니다. -155P-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가진 힘은 바로 그것이다. 피해 당사자를 그 합의 과정으로 끌어내 앉히고 결국은 자기들끼리 적이 되게 만드는, 그래서 결국은 아무도 남지 않는.-169P-

 

 그는 가출하여 옷 만드는 회사, 버스 안내양 등을 전전하다가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용접공이 되었다. 그런 그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자가 되어 노동운동가로 20년을 활동했으나 동료들과 달리 복직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치는 노동 현장은 "말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말을 해도 바뀌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혼자 말하지 못하고 여럿이 힘을 합해 한 목소리를 내면서 요구하는 노동조합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전교조, 간호사 노조, 화물연대 노조, 조선소 노조 등 다양한 노조원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들도 그의 마음을 울리는 풍경소리가 된다.

 

 육성회비를 제 날짜에 못 내더라도, 체육복을 못 빌렸더라도, 크레용이나 조각칼이 없었더라도....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셨다면, 그랬다면 나 같은 것도 어느 한 구석쯤 빛나는 구석도 있지 않았을까. 세상 어디에도, 누구와도, 눈 맞출 곳 하나 없던 아이가 무슨 어깃장을 놓더라도 그냥 바라봐주는 눈빛 하나만 있었다면, 그랬다면...-213P-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단 한번도 학교와 선생님에게 좋은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가난 때문에 미처 못 낸 돈, 그 돈을 이유로 부모를 원망하고,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던 그가 "한 분이라도 계셨다면......"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교육자로서 미안함을 감출 수 없다. 

 

 급식 종사원, 당직 경비, 영양사, 사서, 각종 보조의 이름으로 불리는 학내 비정규직들에게 익숙해진 우리들은 머잖아 하청 교사, 용역 교사에게도 서서히 익숙해질지도 모릅니다. 이 미션 임파서블은 거기까지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관리자거나 희생양이거나 두 종류만 키워 내면 되는 학교에서 아무도 참교육을 말하지 않는 그때까지......-220P-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휴직을 하는 교사를 대신하여 기간제교사를 채용한다. 그는 정규직 교사가 복직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가?  학교에는 크게 정부공무원(교원), 지방직공무원(행정실 직원), 공무직원(실무사, 돌봄전담사, 영양사, 사서, 조리사, 청소미화원, 당직기사 등)으로 나뉜다. 공무직원도 무기계약으로 전환되어 직이 유지되지만 업무는 수행하되 책임은 정부직공무원, 지방직공무원에 비해 미미하다. 또 공무직원은 근로자로 분류되고, 교원과 지방직공무원은 근로자가 아니다.  그래서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은 공무직원만 휴일 근무 수당을 지급한다. 한 울타리 안에 3가지 직업군이 존재하니 복잡할 수밖에. 정당한 업무 수행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 근로자의 권리이자 의무이지 않은가? 언제까지 이 비정규직의 그늘이 이어질 것인가? 그나마 학교 교육이 버티고 있는 이유가 교원이 정부에서 고용하는 공무원이라는 자존감 때문은 아닐까?

 

 비정규직, 이 시작은 어디인가?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후 IMF가 요구한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시작되었다. 그후 25년이 다 되어 가는동안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 곳곳에 교묘하게 운영되고 있고, 2년이면 무기계약이 되니 2년이 되기 전에 재계약을 하지 않는 수법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희망과 꿈을 절망으로 바꾸고 있다. 

 

  그의 책에서는 1300만 노동자 중에 860만명이 비정규직이라 하였다. 원청-하청(용역)-재하청(용역)-재하청(용역) 등의 구조에서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산업현장에서 수시로 용역회사에서 파견나온 젊은이들의 산업현장 사고가 잇따르고 있으나 뉴스에 단 한 줄 나왔다 사라지고, 며칠 후면 똑같은 죽음이 보도된다. 원청 회사의 책임은 벌금 얼마면 잊혀진다.

 

"누구의 책임인지 모른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라고 말한 프란시스코 교황의 말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진숙님과 같은 이들이 산업 현장에서 수만장의 옷을 만들어 내고, 배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나이트, 이브닝을 번갈아가면서 하는 간호사들이 있었기에 우리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되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실감한다. 그들의 뼈와 피와 땀이 있었기에 우리 대통령이 815 연설에서 '평화롭고 품격있는 선진국 도입'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을 빌어 글을 끝맺으려 한다. 이 책은 노동운동을 비난하는 사람, 나처럼 노동운동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 비정규직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자리가 복지임을 알기에 내 자식은 어떻게든 좋은 자리를 차지하여 앉히려고 하는 분들, 일자리 만들기 어려우니 지원금으로 생색내려하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다. 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0.8로 내려갔는지 궁금하신 분에게도 권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내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한진중공업 다닐 때,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