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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류시화<마음챙김 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8. 8. 23:16

 

코로나 시대 마음챙김의 시 꽃다발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했으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하고,

새로운 존재방식을 배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더 깊이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이는 명상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춤을 추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시 일부-키티 오메라(미국 전직 교사)

 

 2020년 2월이후 전세계에 확산된 전염병의 유행으로 봉쇄와 거리두기가 실천되자 미국 위스콘신주에 사는 전직 교사가 쓴 시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시는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유되었고, 엮은이가 키티의 허락을 받아 시집에 실었다.

 

 엮은이 류시화 시인은 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등과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등의 인도 여행기, 번역서<달라이 라마의 행복론>등과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이번 시집은 72편의 시를 골라 시집으로 엮었다. 시인이 살아 있으면 시인에게 연락을 하고, 시인이 고인이 된 경우는 가족과 대리인에게 연락을 하여 시인의 시를 실어도 되는지 허락을 받아서 시집을 엮었다고 한다.

 

 컴퓨터, 핸드폰, 신문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시(詩)를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를 읽는 것은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다. 눈앞의 세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것이며, 다른 삶과 다른 차원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하게는 젊고 늙고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누가 시를 읽는가> 아이 웨이웨이의 말에서(163p)

 

 엮은이는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는 인생을 되돌아보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된다. 삶에 가까이 가는 통로가 된다.

"시는 삶의 모습과 우리 자신을 보여 준다. 그리고 시는 우리 안의 불을 일깨운다. 자신이 마른 지푸라기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럴수록 불이 더 잘 붙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중략) 시인은 성공과 실패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묻는다. 사실 그것이 전부 아닌가. '나'에 진실하기가 왜 그렇게도 어려운 걸까? 그토록 단순한 일인데 말이다. '(161p)

 

 흉터가 되라

어떤 것을 살아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_네이이라 와히드<흉터>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하룬 야히아<새와 나>-

 

 그럼에도 너는

이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는가?

 

그렇다.

 

무엇을 원했는가?

 

나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

이 지상에서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레이먼드 카버<마지막 조각 글>

 

 좋은 시는 무엇을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좋은 시는 몇 개의 단어로 감성을 깨우고 삶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좋은 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속한다. 그리고 현실이 어둠 속에 있을 때 빛과 희망을 준다. (아잔 바라흐마) 좋은 시는 어렵지 않다.  현학적인 말로, 전문적인 용어로 어렵게 쓰여진 글은 머리로 읽는 글이라면 시는 가슴으로 읽는 글이다.

 

  시인이 시인의 눈으로 고른 시들은 마치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글이다. 크리스탈은 그 구조가 비슷하여 쉽게 깨진다고 한다. 나는 크리스탈 목걸이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탈 목걸이를 선물받았을 때 영원하기를 바랐건만 크리스탈 목걸이의 알은 쉽게 깨진다. 벌써 여러개 깨져서 헐거워졌지만 여전히 크리스탈 목걸이는 빛난다. 세월이 지나 목걸이의 줄은 빛을 잃었어도 크리스탈의 알맹이는 아직도 찬란하게 빛이 난다. 시인이 고른 시들도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을 글들이다.

 

 우리가 사는 것이 결국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누군가로 부터 사랑받는 존재였음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시를 보라.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느라 잊고 지내는 나의 가족, 나의 딸, 아들, 남편, 아내, 어머니, 아버지, 누나, 언니, 동생, 형들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살고 있는가?

 

 산다는 것

지금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곡조를 떠올린다는 것

재채기를 한다는 것

당신의 손을 잡는다는 것-다나카와 슌타로<산다>중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또 죽어가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자본주의는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자꾸만 그런 생각들로부터 멀리 떼어놓고 대신에 새로 나온 핸드백, 자동차,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 코로나 사망자, 확진자 등 나쁜 뉴스로 우리를 옭아맨다. 점점 핸드폰에서 손을 떼면 불안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남발하는 말 중에 하나라서 그렇다.) 우리의 삶은 흐르고, 우리는 늙어가고 죽음으로 향한다. 그러는 사이 이반 일리노비치의 말처럼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교육은 학교에서, 치료는 병원에서 등으로 역할이 세분화되면서 인간은 점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고 지적한다.)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로 평가된다"(마야 안젤루)

 

이 시집은 휴식을 준다. 그리고 생각을 준다. 그리고 그 생각을 담을 시간을 갖게 해 준다.

눈으로 읽었다면 꼭 소리내어 읽어야 할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