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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윤고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7. 31. 16:37

  여름휴가를 앞두고 도서관에 신청한 책과 함께 받게 된 <밤의 여행자들>은 섭씨 33도를 웃도는 날씨에 대야에 발을 담그는 추억속의 한 장면을 재현하면서 읽었다. 잘 읽힌다. 재미도 있다. 유쾌하지는 않다. 2013년에 쓴 작품인데 코로나19로 2년째 마스크를 쓰고 외출해야 하는 재난 상황에서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으니 대리만족의 기분도 있다.

 

  작가 윤고은은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무중력증후군>등의 작품을 썼다.

 

 주인공 고요나, 33세, 여성, 정글여행사 과장, 싱글, 한국, 남성 후배가 상사가 되어 성추행을 해도 회사에서 밀려날까봐 적극적인 저지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김과장이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건 '김과장이 성희롱 한 여성들은 다 퇴출 당했는데... 그러면 내가 회사를 떠날 때가 된 건가?'에 생각이 머무는 사람이다.  정글여행사는 사내 연애를 장려하고, 회사 안에 숙소, 은행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회사를 떠날 때에만 회사를 벗어날 수 있는 구조다.

 

 회사 이름이  '정글'여행사다.  이미 현실이 정글인 주인공 요나.

요나는 성경책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퇴출 대상인 여성에게만 대놓고 성희롱을 하는 직장상사 김은 요나에게 여행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고 돌아오라고 말한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고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요나는 가장 비싼 프로그램을 권유받고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요나는 재난 여행 프로그램 제작자로 일했고, 고객센터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수위의 전화를 처리하기도 한다.  정글여행사는 화산의 검붉은 에너지, 대지의 요동, 불의 심판, 노아의 방주, 대참사 공포의 쓰나미 등 재난 지역을 여행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중도에 예약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환불을 해 주지 않는다. 환불을 해 주는 단 한 경우가 있다면 그건 본인이 죽었을 경우다. 

 

  여행 상품은 '사막의 씽크홀'로 화산, 사막, 온천 여행을 겸하며 5000달러에 5박 6일 프로그램이다. 장소는 무이, 제주도만한 섬나라로 베트남 남부를 경유한다. 비행기로 호찌민까지, 그 이후는 버스로 해안도시 판티엣까지 이동하고, 30분 정도 배를 타고 벨에포크리조트에 도착한다. 동행자는 가이드, 교사, 교사의 딸, 대학생, 작가, 요나까지 여섯명이다.

 

 그러나 화산은 볼품없고, 사막은 사구에 불과하였고, 온천은 어디나 흔하지 않던가? 가이드의 이야기가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이다. 무이에 살던 두 부족 카누, 운다족이 서로 복수를 하기 위해 공격하던 중, 카누족이 운다족을 공격해 머리를 잘라 씽크홀에 넣었으며 그 수는 300개가 넘는다. 50년이 지난 그 자리에 지금은 연꽃이 핀 호수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 호수를 '머리호수'라 부른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두 편으로 나눠 운다족과 카누족 마을에 머물며 체험을 할 수 있다.

여행객들은 리조트를 벗어나면 절대 안된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온 나도 수없이 들었던 말 "리조트를 벗어나면 안되요. 위험해요."

 

여행이 끝나고 기차로 이동중에 요나는 화장실 문제로 팀과 분리되어 결국 리조트로 돌아온다. 여기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리조트 직원 럭(luck)의 도움으로 무이에 대해 알아가고, 또 가까워진다. 리조트 매니저는 여행 팀이었던 작가와 새 재난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무이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폴이다. 폴(paul), 파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것,  서울에서도 요나가 회의시간이라고 간 그곳에서 '파울'때문에 회의가 없다고 아무도 오지 않았던 그 파울, 무이에서도 파울은 절대자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파울은 무이의 인기없는 이유를 만회하기 뒤애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우기때면 무이로 수상가옥을 끌고 오는 이들은 연기자가 된다. 8월 첫번째 일요일을 재난의 개봉일로 정한다. 싱크홀 때문에 죽는 사람은 이미 죽은 시체가 대신한다.

 

 모든 연기자는 전체를 알지 못한다. 전체 시나리오를 아는 사람은 작가. 요나, 매니저로 제한한다.  연기자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따라 재난이 개봉된 직후에 폴에서 300달러~400달러를 받기로 계약한다. 1번 트럭 운전사는 물건을 배달하기만 하면 되고, 장례식장 근무자는 물건(시체)이 어디로 가든지 트럭에 실어주기만 하면 된다. 싱크홀을 터뜨리는 단추를 누르는 사람은 오전 8시 11분에 단추만 누르면 된다. 그리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 '무이섬 정착 허가권'을 주겠다고 홍보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대(大, 무이섬 살리기, 폴)를 위해 소(小, 개인)는 희생해도 된다는 지배계급의 논리, 자본주의의 질서와 법칙이 적용된다.  주인공 요나는 75번 연기자다. 대사는 없다. 다만 희생되는 300번까지의 사람 중 한 명의 역할이다.

 

 이반 일리치(오스트리아 출신 철학자, 신학자)는 자본주의의 발달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 1970년대에 <학교없는 사회>등의 책을 통해 말했다. 그의 이론 중  '가치의 제도화'란 도구의 과잉발전으로 인해 도구가 일상의 전 영역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은 병원, 공부는 학교, 이동은 교통수단, 존엄은 사회복지제도, 독립은 군대, 창조는 노동, 안전은 경찰, 정치는 정당, 신앙은 교회, 의사교환은 언론 등 인간 삶과 사회의 여러 가치들이 서비스로 제도화되어 가치와 제도가 혼동되는 사회가 현대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일을 쪼개고, 쪼개면 전체를 아는 사람은 없고 결국 사람은 맡은 일만 알고, 그 일만 하게 되어 결국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시작되기도 전에 오전 3시 쓰나미가 밀려온다.  오전 8시에 시작되기로 한 시나리오가 시작되면 울리기로 한 경보기가 두 번이나 울리자 연기자들은 행동을 개시하지만 섬에 닥친 쓰나미로 재난은 현실이 되고 럭에 의해 맹그로브숲에 피한 소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쓰나미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결국 무이섬은 재난극복지원지역으로 선포되어 개발이 가속화되고, 정글여행사는 이 재난지역에 쓰나미 재난 지역 체험 프로그램 상품을 판다. 이 프로그램은 죽기 전에 요나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이제 요나는 프로그램의 부분이 되어 가이드에 의해 전설이 되고, 이름도 무시무시한 '교살자무화과나무'는 거대한 탑이 두 동강 난 사이를 뚫고 자라나며 자연의 위상과  <트루먼쇼>와 비슷한 <무이 정글 여행> 상품을 바라보고 있다. 맹그로브숲은 인간이 숨을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로 그려진다.

 

재난 여행은 왜 가는 것일까? 사람들은 재난 지역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이어 동정과 연민, 불편함을 겪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나는 안전하다'에 감사하면서 삶에 책임감과 교훈을 얻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럼 재난이 이슈가 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될 것, 지진은 6.0 이상, 화산은 폭발지수 3등급은 넘어야 하고, 그동안 이슈가 되지 않았던 새로운 지역이어야 하며, 만신창이 속에서 피어난 감동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TV와 핸드폰에서 보는 뉴스가 자극지수를 더해 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보아왔던 장면들도 이런 기획에 의해 보여진 장면이었을까?

 

일상에서 위험 요소를 배제하듯,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속의 탄환을 빼내듯, 사람ㄷ르은 재난을 덜어 내고 멀리하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배제된 위험 요소를 굳이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생존 키트나 자가발전기, 비상 천막 같은 것을 챙기면서, 재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아 다닌다. -11쪽

 

  태평양에 한반도의 7배가 넘는 쓰레기 섬이 있고, 세계는 그 섬을 국가로 정하려고 한다는 뉴스가 있다. 이 소설의 첫머리에는 경남 진해에 쓰나미가 밀려왔다는 뉴스로 시작한다. 인간이 겪는 재난이 뉴스가 되고, 여행 상품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돈이 된다. 그러는 사이 사람은 그저 역할을 맡은 1번 연기자, 2번 연기자로 대체되고 잊혀진다. 상품은 여전히 이어진다. 그것은 누구의 기획인지 알 수 없다. 가상의 인물 '폴'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이다.

 

에어컨은 끄고, 대야에 물을 받고, 얼음을 띄워놓고 발을 담그면서 읽은 책 <밤의 여행자들>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