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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은유<글쓰기의 최전선>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7. 19. 21:01

   작가 은유는 2011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 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해 현재 학습공동체 '말과활 아카데미'와 글쓰기 모임'메타포라'에서 정기 강좌를 진행한다. 평소 니체의 시를 읽으면서 질문과 언어를 구한다고 한다. <쓰기의 말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다가오는 말들>,<올드걸의 시집> 인터뷰집<폭력과 존엄의 사이>,<출판하는 마음>,<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등의 작품이 있다.

 

  지난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듣게 된 강사선생님의 추천하는 책 일순위가 바로 은유 작가의 이 책이었다.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학인(글쓰기에 참여하러 온 사람을 칭하는 말)들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있었던 생각과 사례들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 책이다.  첫 장에 "나는 왜 쓰는가"의 시작으로 "우리는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수많은 방식으로 외적 원인에 의해 휘몰리며, 우리의 운명과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동요한다."는 문장을 적었다. 내가 고민한 내용이다. 나도 큰 강물처럼 밀려오는 외적 요인들에 의해 흔들릴 때마다 물살에 떠내려 가지 않으려고 뭔가 붙잡아야 한다. 그게 뭘까? 그게 철학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나와 맞닿는 생각에 놀란다.

 

 나도 학인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글마다 작가가 꼽은 메타포들이 눈에 들어와 옮겨 적어본다. 어떤 내용은 쉽게 읽히고, 이해가 되지만 어떤 내용은 여러 번 읽어도 머릿속에서만 맴돈다. 가슴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더 읽고, 더 생각해야 닿을 수 있는 언어인가 보다.

"모든 글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다"

'나'와 '세상' 에 대해 사유하고 감응하고 옹호하는 글쓰기

'왜'라고 묻고 '느낌으로 써내려가는 그 섬세한 몸부림의 시간을 담았다.

 

‘작가는 가슴에 구멍이 난 사람이다. 그 구멍을 언어로 메운다.“-권혁웅시인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자기 검열, 사회적 검열에 걸려 넘어지면 글을 쓰기 어렵다. 대개는 자기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로 남을 대한다. 만약 누군가 자기 과거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유사한 삶의 경험치를 가진 타인을 동정과 수치로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정은 자기의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다.

 

“ 에술에서 최악은 부정직하다는 것이다. 문학은 저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대한 정직한 표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글쓰기는 용기다. 용기가 충만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글을 써내는 과정에서 문제에 직면하면서 용기가 솟아난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억눌린 욕망, 피폐한 일상 같은 고통의 서사를 길어 올리는 학인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삶에 관대해질 것

상황에 솔직해질 것

묘사에 구체[적일 것

뭐라도 있는 양 살지만 삶의 실체는 보잘것없고 시시하다. 그것을 인정하고 상세히 쓰다보면 솔직해질 수 있다. 상처는 덮어두기가 아니라 드러내기를 통해 회복된다. 글쓰기는 상처를 드러내는 가장 저렴하고 접근하기 좋은 방편이다. 일단 쓸 것.

 

   작가가 매번 글을 시작할 때 제목 아래에 적은 메타포들을 옮겨 적어본다. 이유는 글쓰기를 할 때마다 읽어보고자 함이다.  글쓰기가 자신만을 만족시키면 일기에 불구하나 누군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를 설득시키고, 또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 글쓰기는 비로소 완성된다.

 

다른 생활습관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인간 본질의 무한한 다양성을 구경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의 학교를 모르겠다. -몽테뉴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문제이다. -전태일

길도 자아도 열어 두면 위험할 것 같지만,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름이 우리를 지켜줍니다-김우창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성복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마사 킨더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에이드리언 리치

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김수영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다. -발터 멘야민

누군가 내게 물었다. 시를 쓰는 힘은 도대체 어떤 거냐고. 나는 대답했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힘이라고. 이 세계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이 세계에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이 시를 쓰는 일이라고.-김소영

시란 금방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인데도, 우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떠 마신다.-황지우

이렇게 人情의 하늘이 가까워진 일이 없다. 남을 불쌍히 생각함은 나를 불쌍히 생각함이라-김수영

사람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자신은 모릅니다. 알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모르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은 알고 있는 것도 있거든요. 이 영역이 제가 글을 쓰는 장소라고 생각해요.-후루이 요시키치

산다는 것은 타인의 견해를 가지고 코바늘뜨기를 하는 것이다.-페르난두 페소아

오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프란츠 파농

첫 번째 판단을 버려라, 그것은 시대가 네 몸을 통해 판단한 것이다.-니체

 

사유의 가치는 사유가 친숙한 것의 연속성과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가를 통해 가늠된다.-아도르노

아무렇게나 끄적거리고 시를 토하여 ‘이것이 나다’라고 외칠 수 있는 어떤 영역, 한 점을 찾아 헤맵니다. 제가 그저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서......-채사레 파베세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에민성’ 무언가 관심의 흐름 안으로 헤엄쳐 들어왔을 때 그것에 대해 떠올린 것을 얼마나 꼼꼼하게 옮겨 적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수전 손택

니체의 작품을 읽은 뒤 나는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상하고 알 수 없고 외로운 수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조르조 대 키리코

언어도 우주처럼 부름과 응답의 세계이다. 밀물과 썰물, 합일과 분리, 들숨과 날숨의 세계인 것이다.-옥타비오 파스

문장 깊숙이에는 프로이트나 라캉이 말하는 ‘언어의 환각’ 같은 그 무엇이 있다.-롤랑 바르트

당시에는 지긋지긋했지만 이제 그 기억은 내 마음이 뜯어먹기 좋아하는 좋은 풀밭이 되었다.-조지 오웰

이제부터 인생이 무어냐고 묻거든 허튼 삶 삽질하는 힘이라고 말해둬-고정희

몸을 가진 것들은 걸린다. 걸려본 발이 길을 알리라-이원

예술작품은 하나의 감각 존재이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그것은 그 스스로 존재한다-들뢰즈 가타리-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의 매혹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모리스 블랑쇼-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이성복(남해금산)

가던 길 나는 좋아 한 뽄새로 가노라-한설야-

음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 자이다.-파울 첼란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 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 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김애란

관계란 기억의 교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평범한 기억밖에는 만들어줄 수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황현산

삶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안도현

질서란 허위다. 숨길 것을 숨기고 난 후의 묵계에 불과하다-이수명-

마주치거나 부딪치지 않고 이해되는 것은 없다.-김현-

 

내게 와 닿은 글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어라!

"아버지께서는 매일 폭음을 하시고, 방세를 못 준 어머니께서는 안타까워하시고, 동생은 방학책 값, 밀린 기성회비 때문에 학교에 안 가겠다고 아침마다 울면서 어머니의 지친 마음을 괴롭힐 땐, 나는 하루하루가 또 돌아온다는 것이 무서웠다."-전태일-

 

 그리고 내게 묻는 말이 있다.

'너는 누가 읽으라고 이 글을 쓰는가?'

'내 글이 누구에게 도움을 주는가?'

 

작가는 니체를 사랑한다. 곳곳에 니체의 말이 읽힌다.

그 중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니체의 말이 마음에 들어 적어본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살아가면서도 우웃에 관심을 갖고, 그들과 교감하면서 삶의 옹호자로서의 작가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나는 이 책에서 읽는다.  니체의 말이 은유작가를 그대로 말해 준다.

 

"우리가 충분히 배우고 우리의 눈과 귀를 충분히 연 경우 언제든 우리의 영혼은 더욱 유연하고 우아하게 된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 물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온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사람이 불안전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서문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