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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무라카미하루키 소설 <일인칭 단수>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7. 4. 13:20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인기도서 작가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요즘 일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다.

 

이 책은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엮었다. ‘돌베개에/크림/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위드 더 비틀스/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사육제/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일인칭 단수

 

작가는 이렇게 밝힌다.

일인칭 단수란 세계의 한 조각을 도려낸 홑눈이다. 그러나 그 단명이 늘어날수록 홑눈은 한없이 서로 얽힌 겹눈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 개인)는 이미 내가 아니고, (, )도 이미 내가 아니다. 또한, 그렇다. 당신도 더 이상 당신이 아니게 된다. 그것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일인칭 단수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작가가 밝힌 대로 이 책에 실린 작품의 공통점은 꿈인가? 현실인가?, 아니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식의 기록들이라는 점이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헤매다가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다가 순식간에 바람과 햇빛에 의해 안개는 사라지고 눈앞의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또 하나는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전에 노르웨이 숲을 발표했을 때도 음악과 함께 소설이 많이 알려지곤 했다. 작가가 음악에 조예가 깊음을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돌베개에는 스무살 무렵, 하룻밤 함께 지낸 사람이 보낸 단카(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고유번호 28번이다. ’두 번 다시는 /만날 일 없네/ 생각하면서도/못 만날 거/없다고 생각하는/만나려다/ 그저 이대로/끝내려나/빛에 끌리고/그림자에 밟혀‘ ’벤다/베인다/돌베개/목덜미 갖다 대니/보아라, 먼지가 되었다작가가 늙음과 죽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림은 음악회에 초대받아 찾아간 곳의 문은 닫혀 있고, 근처 공원에 앉아서 쉴 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노인이 하는 말 중심이 여러 개, 아니 무수히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고는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음악에 대한 언급에 대해 알아보자. ’찰리 파커 플레이트 보사노바에는 재즈 연주가 찰리 버드파커, 피아니스트 카를루스 조빙의 코르코바도, 원스 아이 러브드, 바이 바이 블루스, 아웃 인센시티브, 원스 어게인, 딘디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 3악장이 나온다. ’찰리 파커는 1955년 사망했고, 보사노바는 1962년 히트했으니 찰리 파커가 1960년대까지 살아남아서 보사노바 음악에 흥미를 느끼고 직접 연주까지 해줬더라면... 이라는 가정하에서 이 작품은 쓰여졌다. 세대를 뛰어넘어 조우하는 장면을 상상하다니 작가의 상상력이 음악에까지 가 닿았다는 점이 놀랍다.

위드 더 비틀에는 비틀스의 음악이, ‘사육제에는 슈만의 사육제가 작품의 중심축이 되어 흐른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작은 온천 여관에서 만난 말하는 원숭이와 나누는 음악 이야기가 나온다. 원숭이는 대학교수 부부에 의해 말을 배우고, 음악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73악장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주인공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두 곡을 찾아서 들어본다. 73악장은 원숭이의 말대로 용기가 나는 곡이고, 9번은 주인공의 말대로 아름답다. 원숭이는 마음에 드는 여성의 이름표나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훔쳐서 염력을 통해 그녀의 이름을 조금 덜어내 간직한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낯설게 느끼게 된다는 거다. 원숭이가 말을 하고, 등을 밀어주고, 원숭이와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이야기하다니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가?

 

소설 <일인칭 단수>는 여덟 편의 단편소설로 작가가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벗어난 아주 작은 에피소드를 길고 가는 줄에 꿰어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 이야기에 음악과 간혹 포도주와 술과 시가 들어 있기도 하다.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도무지 무슨 의도로 쓴 문장인지 모르는 문장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이다.

 

책이 한 손에 잡힐만한 크기이고, 두께도 얇으니 여름 휴가지에서 가볍게 읽을 책으로 준비해도 좋을 만한 정도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연배의 사람이라면 더 잘 이해하고 읽을 수 있으려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