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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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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1.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6. 11. 23:05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첫 번째 생신을 챙겨드리는 게 좋다는 제안에 따라 고향집에 모여 아버지의 생신상을 차렸다.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을 마련하여 생신상을 차린 후 함께 식사하고,  산소에 가서 찾아뵙기로 한 거다.  그런데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생각해 보니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노년 이후에는 병원에서 생과일이나 생김치가 신장에 좋지 않다고 하여 드시지 않았다.  소고기 미역국, 고동국,  전을 몇 가지 부치고,  무김치, 꼬막, 갑오징어,  제육볶음, 체리, 바나나, 여름귤, 케이크까지 차려놓고 케이크 위의 초가 다 탈 때까지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숭아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못 드셨고,  익힌 김치를 드셔야 해서 일 년 내내 김치찌개를 드셨었다. 

  돌아가셨는데 생신이 무슨 소용이야? 라고 생각하지만 돌아가신 분의 삶을 기억하고,  의미 있는 날로 기억해 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건 돌아가신 분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가족들에게도 의미 있는 날로 남는다.  작년에는 케이크의 초를 아버지가 껐지만 올해는 엄마가 대신 껐다.  그래도 고향집 이곳저곳에는 아버지의 흔적이 가득하다.  뜰에 심은 사과나무,  배나무, 빨간 백합,  주황색 백합,  노랑국화, 자주국화 등등의 식물들이 뜰을 가득 채웠고,  10년이 되었어도 깨끗한 자전거,  밭일할 때 신던 장화,  자주 앉아 계시던 소파에 책상까지 그대로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 존재한다. 

 

  고향마을 느티나무는 1982년에 470살로 추정하였다.  올해도 여전히 잎이 무성하게 그 자리에 지키고 서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서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그 그늘을 기억할 것이다.  나도 그 아래에서 어릴 적의 그늘을 기억한다.  아버지와 지난해 5월에 찍은 사진을 금속에 인화하는 액자로 가져다 두었다.  산소에 갈 때마다 아버지는 웃는 모습으로 가족들 옆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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