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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흙.바람 +나
2023. 5. 25. 본문
열흘 전에 강진에 다녀온 이후 정약용선생님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22세에 벼슬에 나가 40세까지 18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40세에 귀양을 가서 18년을 포항 장기,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57세에 남양주로 돌아가서 18년을 지내고 75세, 결혼 60주년이 되는 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유배지에서 책을 읽고 재정리하여 500여 권의 책을 남겼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는 정약용선생님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그중 수오재(守吾齋) 부분에서 크게 울림이 있어 옮겨 본다.
수오재(守吾齋)는 큰 형님이 그 집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 의심하며, 사물이 나와 굳게 맺어 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는 나(吾)보다 절실한 것이 없으니, 비록 지키지 않은들 어디로 갈 것인가. 이상한 이름이다."라 하였다. 내가 장기(長鬐, 포항시 장기면)로 유배 온 이후 홀로 지내면서 정밀하게 생각해 보았더니, 하루는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스스로 말하였다. "대체로 천하 만물이란 모두 지킬 것이 없고, 오직 나(吾)만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守吾齋記>
천하만물은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직 '나'라는 것은 그 성질이 달아나길 잘하며 들고남이 무상하다. 비록 친밀하기 짝이 없어 바싹 붙어 있어서 배반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잠깐이라도 살피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익과 벼슬이 유혹하면 가버리고, 위세와 재앙이 두렵게 하면 가버리고, 궁상각치우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들으면 가버리고, 푸른 눈썹 흰 이를 한 미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면 가버린다. 가서는 돌아올 줄 모르니 잡아도 끌어올 수가 없다. 그러니 천하에 '나'처럼 잃기 쉬운 것이 없다. 굴레를 씌우고 동아줄을 동이고 빗장을 잠그고 자물쇠를 채워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다. 나는 허술하게 간직하였다가 '나'를 잃어버린 자다. <여유당전서>-
그래서 강진에서 처음 머물던 주막의 방에 사의재(四宜齋)라 써붙였다고 한다. '네 가지 마땅한 것을 행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생각은 담백하게, 외모는 장엄하게, 말은 적게, 움직임은 무겁게 하라'라고 스스로에게 주문하는 글이었다고 한다.
정약용의 마음을 헤아려 쓴 글 <고해>를 읽고 있다. 인간적인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생각이 앞서서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디다. 음미하면서 읽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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