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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詩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본문

시 읽는 수요일(시 큐레이터)

안도현 詩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9. 28. 11:09

내가 살아 있음이 결코 나 혼자의 일이 아님을 늘 잊고 사는데

가을이 되고, 추석을 앞두고 있으니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임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안도현님의 유명한 시가 생각나서 옮겨 적어 본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시 전문-

 

 

누군가를 위해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는

물음에 그렇다! 라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78억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실천하는 삶으로

남은 삶을 채우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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