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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10. 3. 22:48

 

   지금 세상은 새로운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누가 답할 것인가? 

 

  이 책은 좌담과 칼럼 형식으로 철학문화연구소에서 엮어냈다. 철학문화연구소는 1987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한 김태길 선생이 열었다. 1989<철학과 현실>계간지가 시작된 이후 최근 132회차가 발간되었다. 김태길 선생이 철학문화연구소를 처음 열게 된 계기는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활을 하는 철학, 바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철학,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말로 생각하는 철학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철학자만의 철학이 아닌 누구나 공유하는 철학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김태길 선생의 시작이 계속되고 있음을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알게 되었다. (계간 철학과 현실 (philculture.com))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20223월에 발간되었다. 발간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20222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이후 세계정세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202239일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임하는 2022510일로 새롭게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가?”를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 사회학부 석좌교수가 편집인으로 있는 <철학과 현실>에 실린 철학자들의 글을 모았다. 기후 위기, 세계 경제 동향, 국제 정치 변화, 지도력, 능력주의, 기본소득, 메타버스 등으로 1부는 전 지구에 걸친 문제와 우리의 선택을 2부에서는 삶과 직결된 현안과 쟁점으로 한국의 문제와 답을 찾아 제시하고 있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일종의 공상 사회학 소설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말인데 급속도로 일반화되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부, 권력, 명예 등을 갖는 것이 올바르다고 보는 분배 정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 권력, 명예 등의 사회적 재화를 어떤 사람의 타고난 혈통이나 신분 같은 세습적 지위가 아니라 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분배해야 정의롭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근대사회, 일정 방식의 민주주의 발전의 초석으로 작동했다. “누구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라는 신념은 능력주의의 강한 호소력으로 사람들에게 작용했다.

그러나 부모의 재력을 이용한 사교육, 입시비리, 취업 비리는 은폐된 세습 체제가 되었고,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귀족이 약자에게 갑질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다. 약자의 요구를 패자의 무임승차주장으로 여기는 데에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북한의 세습 정치와 재벌의 세습 경영, 기득권층의 입시비리, 부동산 비리는 세습되고 있는데 북한의 세습 정치는 비난받고 있으나 재벌의 세습 경영, 기득권층의 부동산 축재와 입시비리, 취업 비리는 승자독식의 전리품으로 취급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묻고 있다. 이미 능력주의는 능력(자들)의 폭력, 전횡(the tyranny of the meritocracy)”이라고 마이클 샌델 교수가 <공정이라는 착각>에서 말하고 있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장은 사회 개혁이 이루어지면 교육 개혁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하였다. 이미 2009년 이후 혁신 교육을 주창해 왔지만, 학교 제도는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전교조 출신 또는 전교조의 세력을 업은 진보 교육감만 양산되었고, 그들은 정치인이 되었으며 학교는 정치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교육 개혁을 위한 세 가지 제안을 정리해 보자. 첫째, 교육의 헌법적 가치를 포함해 불평등한 능력 신화가 심각하다. 교육을 통해서 기회나 능력을 박탈하는 구조는 빨리 개혁되어야 한다. 그 출발은 교육 개혁이 아니라 사회 개혁이어야 한다. 사회 개혁하면 교육 개혁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둘째, 현재 한국의 정치의 축을 이루는 민주화 세대의 심각한 문제 인식이 필요하다. 민주화 세대(586세대, 50대 나이, 80년대 대학 시절을 보냈고,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평등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해결하라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해결을 위해서는 기본 교육, 기본 권리, 기본 건강보험, 기본 연금 등 인간으로의 존엄함을 누리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교육 문제의 해결책은 가치 개혁, 문화개혁으로 제도개혁을 끌어내는 일로 정치가 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면 학력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존엄성을 존중할 줄 아는 정치 세력이 폭넓고 지속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아 새로운 가치 체계를 확립하고 그에 맞게 법, 제도를 만들어서 가능한 북유럽의 사례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지난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1년 소비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기본소득이 지급되었다. 그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새로운 주장들이 생겨났다. 현대 기본소득을 주장한 사람은 판 파 레이스다. 기본소득은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그들의 다른 소득 원천이 있든 없든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고 현금의 형태로 정규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부드러운 사회주의라고 불린다. 판 파 레이스는 기본소득은 사회주의를 거치지 않고 공산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수원 세 모녀 사건 등 복지 관련 지원금을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구조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다만 기득권층이 세금을 많이 내는 구조로 20%가 더 내고 80%가 혜택을 받아 능력주의의 폐단을 해결하는 이 좋은 정책이  이루어지려면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자유와 공정한 선거, 정치적 자유 보장, 제한받는 권력, 정권 교체의 가능성, 법의 지배다. 민주주의의 후퇴(터키, 폴란드, 헝가리)와 표퓰리즘의 등장(트럼프 정치, 영국 영국 유럽연합 탈퇴 투표,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결과라는 점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기득권을 틀어쥔 금수저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것이 흙수저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가고 있고, 소수의 제한된 기회를 놓고 개인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학력 격차, 일자리, 출산 거부, 부동산, 젠더갈등, 세대 갈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기득권의 성이 견고할수록 성 밖의 젊은이들은 성안으로 진입하려는 의욕과 희망 자체를 포기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시국에 극단적 대립, 불신을 거두고 포용력과 개방성을 증진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소통, 민주적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대중영합주의, 거리 정치가 만연한 실정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시민 교육이다.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주의는 반공주의였다.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제 민주주의의 관용, 공존, 다양성의 공존에 관심을 가질 때다.

 

  이 책은 무게감 있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어렵지 않은 말로 쓰여서 읽기에 어렵지 않다. 김태길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은 철학자들의 노력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2022년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문제들을 다각적인 시점에서 풀어 쓴 내용이다. 103일 개천절에 읽으니 더욱 뜻깊다. 국가,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이 나라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이런 고민은 국민의 몫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읽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