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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이 주는 선물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2. 8. 17:15

  다산 정약용 선생은 <늙은이의 한 가지 즐거움(老人一快事)>이라는 시를 여섯 수 남겼다. 75세를 산 선생이 71세에 쓴 시로 늙음에 따른 신체 변화를 겸허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달관의 자세를 보여준다.  

늙음이 주는 뜻밖의 선물에 대한 내용이다.  그 번역을 찾아 보니 늙음에 대해 통찰한 내용이 남다르다. 

 

머리카락이 없어지니 감고 빗질하는 수고도 없다. 백발의 부끄러움도 없으니 민둥머리가 참으로 유독 좋아라.

 

 치아가 없으니 치통으로 괴롭지 않고, 잇몸으로도 먹고 싶은 걸 먹으니 좋다. 다만 턱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여 씹는 모양이 약간 부끄러울 뿐이나 치통에서 해방되니 즐겁다.

 

 눈이 어두우니 학문을 공부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느라 머리 아플 필요도 없고 강호의 풍광과 청산의 빛으로도 충분하니 즐겁다.

 

귀가 안 들리니 세상 시비 다툼 뿐인 소식을 안 들어서 좋다. 

 

퇴고도 오래 할 것 없고, 남의 비평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기호에 맞게  붓 가는 대로 글을 쓰니 좋다. 

 

소일거리로 바둑을 두되 만만한 상대만을 골라 편안히 지낼 수 있으니 즐겁다고 늙음이 주는 선물을 노래한다.  

 

  늙어서는 젊어서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소중히 사색해 보는 시간으로 보내도 될 것이다.  <맹자>에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물은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후에 흘러넘쳐 다음 단계로 간다'는 의미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응해 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젊은 시절을 보냈으니 늙음을 받아 들이고,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넘겨주는 것이 지혜롭다는 말이다. 

 

 

 지혜롭고 성숙한 노년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주해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세 가지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끊임없이 배우기"다.  

 "젊어서 공부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고, 늙어서 공부하는 것은 밤에 촛불을 켜놓은 것과 같다. 젊어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야 없겠지만, 늙은 후에 공부해도 늦지 않다. 촛불을 밝히면 어둠은 사라지니, 계속 비춘다면 밝음을 이어갈 수 있다. 해와 초가 다르기는 하나 밝기는 마찬가지이며, 밝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맛은 더욱 진실되다."(춘추전국시대, 사광(師曠) 배우는 즐거움을 익히 아는 나이이기에, 노년의 배움은 삶을 더욱 즐겁게 해 준다. 

 

 둘째, "항상 조심하기"다.

  젊어서 실수는 만회할 시간이 있으나 늙어서의 실수는 만회할 시간이 적다. 

  "군자는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여색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에는 혈기가 왕성하니 싸움을 경계해야 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쇠잔했으니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논어, 계씨) 요즘 노년은 여전히 기운이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세 가지 모두를 조심해야 한다. 

 

 셋째, "잔소리 줄이고 인정해 주기"다.  

"고인들이 자손을 훈계한 글을 자손들이 지키는 것만 보고, 말을 안 했다면 몰라도 했다면 어떻게 내 말을 안 들으랴 여겼다. 그래서 수시로 경계의 뜻을 실어 스스로 깨닫게 하면서, 때론 비유를 들어 감동시키고 때론 절절한 말로써 격동시키며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아, 어찌 알았으랴! 세상이 옛날과 사뭇 다르고 풍습이 점차 변하여, 훈계를 펼칠 도리도 없고 따를 사람도 없어서 그저 시끄러운 잔소리에 불과할 줄을."(조선 윤기(尹愭), 정고, 가금, 권한, 유계 등을 위에 쓰다.)  사람은 남의 말로써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은 "인정 욕구"가 있어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다. "공치사"도 인정 욕구 중 하나다. "내가 인정 받고 싶으면 남도 인정해 주면 된다"고 생각하고 훈계 대신 인정해 주는 게 노년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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