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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타비(我是他非)에서 존엄의 시대로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2. 23. 16:35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우리가 흔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특히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나만 옳다고, 아니 너무나 아름답게 잘 사는 모습처럼 비추었던사람들의 지나온 삶의 부끄러운 모습들의 민낯이 계속 공개되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누려온 일들이 너무나 당연하여서 , 그 사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기에 그 사회에서는 누구도 전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성과주의, 능력주의 사회였다.  남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접받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학벌, 지역, 군대,  학연 등 그야말로 '끈'이라는 말이 붙어서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sns 팔로워라는 것까지 갖다대면서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서사회(階序社會)가 형성되었다.  대기업-원청-하청, 재하청업체의 서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서열,  기간제와 시간제의 서열...... 그러니 대기업은 영업직이 아니어도 구색 맞추기 식으로 토익점수 900점과 스펙, 스펙, 스펙을 요구한다. 

 

   전형적인 상류사회와 하층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불편했던 것은 그런 기분이었다. 어제까지 방안에 있던 장롱을 버리려고 쨍쨍한 햇빛 아래에 끄집어 내 놓았을 때 왜그리 볼품없고 초라한 지. 어제까지 우리집에서 쓰던 내  물건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기분이라고나 할까.  

 

 지난 겨울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으로 묘사되었다는 부암동 자하문터널에 간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상류계급과 하류계급을 연결하는 계단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 계단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그 아랫동네의 냄새는 윗 동네에서는 불쾌한 냄새로 기억된다. 

 

  이제 존중의 사회를 넘어 존엄의 사회를 지향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그동안 존중과 배려를 사회의 미덕으로 꼽았다. 그 이유는 존중과 배려가 실천되지 않기 때문에 매번 강조되어 왔던 것이다.  존중 대신 무시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배려 대신 갑질이 당연시 되었기 때문에 밥 먹듯이 존중과 배려를 말하였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안전을 강조해 왔다.

존중과 배려

그 뜻을 살펴보면

존중: 매우 중요하게 대함,  배려: 짝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함 으로 사전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존엄을 찾아본다.

존엄: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함, 예절로 임금의 지위를 이르던 말이다.

 

 이제 우리는 성장 주도의 경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필요재의 인간 존재가 아니라 개개인의 삶과 행복을 누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한사람, 한사람 소중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나도 옳고, 너도 옳다.

우리 모두 옳다. 고 말할 있어야 한다.

내가 향하는 방향이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한 길인가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오늘 도시락을 먹으면서 서랍에 넣어둔 숟가락을 씻어서 먹고, 

잔반은 남기지 않았으며,

프라스틱 용기를 잘 씻어서 재활용함에 넣었다. 

이런 행위가 선한 영향력의 시작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