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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초보노인입니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12. 18. 18:11

  어쩌다 실버아파트 입성기 

  브런치(다음카카오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앱)에 쓴 글을 책으로 묶어냈다.  작가 발굴을 위해 글쓰기 공간을 공유하고,  글 쓰는 사람은 책의 저자가 될 수 있으니 상부상조인 셈인가?

 

  누구나 노인은 처음이다.  작가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퇴직했으며  아파트에 살다가 퇴직자의 로망인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갔으나 불편함을 못 견뎌 실버아파트를 샀다.  거기서 2년 7개월을 살고 너무 일찍 들어갔다고 판단하여 그 집을 전세 주고 살던 동네로 전세를 얻어 갔다.  전세 준 집으로 언젠가 돌아간다는 생각이란다.  실버아파트는 어떤 곳일까? 대형병원 옆에 있고, 매 끼니를 아파트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물론 사 먹는다), 바로 옆에 장례식장도 있다.   '1부는 어쩌다 실버아파트로, 2부는 실버아파트 주민들, 3부는 실버기의 초입에서'로 순서를 정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향기는 여느 세상과 비슷하나 한없이 조용하고 담담한 곳, 왈칵 울음을 터뜨릴 만큼 서러운 일도 울화통을 건드릴 만큼 화나는 일도 이치를 따져가며 목청을 높일 일도 견딜 수 없이 기쁘거나 슬픈 일도 모두 숙성되는 이곳'(p.114) 작가는 실버아파트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그 말을 바꿔보았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향기는 여느 세상과 비슷하나 한없이 조용하고 담담한 사람, 왈칵 울음을 터뜨릴 만큼 서러운 일도 울화통을 건드릴만큼 화나는 일도 이치를 따져가며 목청을 높일 일도 견딜 수 없이 기쁘거나 슬픈 일도 모두 숙성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어른인 것 같다.  어른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요즘이다. 

  그럼 멋진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순간 발발이 할머니가 다시 보였다. 할머니의 아우라는 특이한 차림의 외모가 아니라 그의 마음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이도 환경도 성별도 상관없이 친구가 되어 세상을 구경하는 게 남은 삶의 즐거움이 되어 있는 사람. (p. 57) 싫은 법도 하지만 '발발이'라는 별명을 개의치 않고, 지나가는 누구에게도 밀크커피 한잔을 내밀고, 같이 모란시장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발발이 할머니다.  누가 뭐래도 자기 삶을 사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가 아닌가 한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늙어도 예쁨에 대한 미련은 늙지 않는 것일까? 그 딸도, 나도. 또 내가 똑같다고 생각했던 다른 할머니들도?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할머니들은 다 똑 같아라는 시선으로 살고 있었음을 왜 몰랐을까? 참으로 황당하고 막돼먹은 자의식만 내뿜으며 살았구나. 부끄러웠다. (p.129) 작가는 실버아파트에 살면서 다 똑같은 노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고 바깥출입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 똑같지 않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예쁘게 치장하고 시폰 원피스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게 삶의 첫 번째 태도임을 말하고 있다. 

 

   놀라운 게 있다면 초등학교 교사로 오래 근무했음에도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먹물은 쏙 빠진 채 일반인으로서 글을 썼다는 점이다.  호흡이 바쁘고 생기가 넘쳐서 읽는 사람이 즐겁다. 실버아파트 이야기가 지루하고 조용하고 답답할 것 같아도 저자가 있는 주변은 생기가 넘칠 것 같은 문체다.  늙음은 누구나 처음이다.  늙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머지 않아 지금보다 더 늙음을 실감하게 될 때가 오고 있음을 예감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늙음이 '성공, 발전, 계발'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개인의 일임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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