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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12. 12. 22:15

이겨낼 수 있는 건 흉터로 남지 않는다

 

  저자 김현아는 한림대성심병원 류머티즘 내과 의사다.  남편은 서울대학교 병원 신경외과 의사다.  그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그중 둘째 딸이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고 있다.  힘들었던 7년의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냈다. 

 고흐(1853-1890)는 경계성인격장애로 보이는 성격을 보였다.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상대방의 반응에 급격하게 달라지는 반응을 보였으며 자해와 자살을 선택한다. 그는 목사가 되어 뒤를 잇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절하고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어머니는 고흐를 보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 후 고흐는 타향을 떠돌았고, 동생 테오에게 의지했다.  죽을 때에도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화가로서 10년 동안 875점의 회화와 1000점의 데생을 남겼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무엇일까?(60p) 어렸을 때의 환경이 정신질환과 강력하게 연관이 있다. 유년기 부정적인 생애 경험은 아버지의 과보호는 강박성 위험을 2.2배 증가시키며 임신 중 엄마의 핸드폰 과다사용은 ADHD 위험이 1.3배 증가한다고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2010년을 기점으로 많은 어린 여성들의 자살이 증가하는 이유를 SNS로 본다. (66P) 초등학교부터 SNS 사용으로 외모 비교, 성평등에 대한 높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현실에 대한 부담감, 여성에게 가혹한 취업 시장, N 번 방으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상품화와 일상적 성적 착취, 성폭력 등에 대한 불안감들이 자살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한다.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월등히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조용한 학살'이라고 부르는 자살 코호트효과가 90년대생 여성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저자의 딸도 여기에 속한다.  저자의 딸은 고등학교 때부터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대학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든 딸을 공부 잘해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엄마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빠가 이해할 수 있을까? 딸은 대학 재학 중에 자해와 병원 응급실,  보호병동 입원까지 수차례 겪었다.  엄마, 아빠가 의사고,  병에 대해 일반 사람들에 비해 지식이 많았어도 결국 병을 앓는 7년 동안 깨달은 것은 살아서 가족 옆에 있다는 점에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좋아질까?라는 질문에 20대는 6.5%, 30대는 10%만 동의했다고 한다(281P, 국회미래연구원) 또 지난 15년간 소아 양극성장애(조울증)는 40배, 자폐증은 20배, ADHD는 3배 증가했다고 한다. 이를 '진단 인플레이션'이라 말한다. 이로 인해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사람도 20년간 4배 증가했다.  병원에 가면 의사를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외국에서는 '진료시간 45분 내에 진단 내리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는 피하라'는 말이 있다는데 한국은 어떤가? 정신과는 좀 다를 지도 모르겠으나 내과, 정형외과 등의 병원에서는 1분도 채 안된다. 검사 결과를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서 의사는 환자와 대화 몇 마디만 나누고 바로 약처방을 기록하고 잘 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미국 어린이 8~9%가 ADHD, 2%가 자폐증, 8~10% 불안장애, 11%가 우울, 2.5%가 양극성장애, 1%가 조현병으로 정상은 없다고 인류학자이자 정신과의사인 리처드그린커가 밝혔다(278P)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쓴 수 클리볼드는 "부모가 어떻게 해서 혹은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녀가 정신병을 앓고,  총기난사 사건을 일어나게 한 행동이 부모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2015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타냐 루어먼교수가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조현병환자 중에서도 가나에 사는 환자의 환청은 주로 신과의 대화, 삶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인데 반해, 미국의 환자는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하라는 내용이 주였다고 한다. 주변 환경이 환청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도 말한다. '조금도 상처를 주지 않고 아이를 키워낼 수 있는 완벽한 정상가족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180P) 

 

 저자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해 줄 수 있는 일을 해 줄 뿐이다"라고 말한다. 과도한 연민 대신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고, 가족이 자신의 마음을 먼저 다스리고 가족을 지키는 노력을 하되 내가 해 줄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여 선을 긋는 일도 중요하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여기!라고 말한다. 

 

  넷플릭스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찾아본다.  양극성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조현병,  우울증 등의 증상은 어떤 모양을 띄는지,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우리 사회는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하면 격리부터 하려고 한다.  사회적인 포용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공황장애 등을 힘든 사람들이 많다. 누구나 병원에 가지 않았을 뿐 언제든 병원에 가야 할 잠재적 환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사회 문제를 담고 있는 개인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읽는 동안 우울증에 걸릴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울한 기분만은 떨칠 수 없다.  다만 의사로서의 병을 파헤치고 뇌의 역할과 뇌의 문제로 풀려고 하는 대목에서는 의사의 전문성이 보이는 데 이 부분이 필요 없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의사 엄마가 아니라 양극성장애를 앓는 딸의 엄마로서 딸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을 썼다면 더 진솔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책은 딸의 병이 호전되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이 한마음으로 딸의 회복을 도왔고, 함께 지내게 되는 등의 긍정적인 가족 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가족의 노력이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정신병들도 일반 질병과 같이 관리되고 보호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