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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강신주의 감정수업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11. 1. 23:38

무지개보다 찬란한 감정이라는 색을 내 안에서 찾는다면

 

   강신주교수는 철학자로 알고 있었는데 동서양의 철학에서 감성의 세계를 열고 있다.  인문 고전을 통해 농익은 감정들이 어떻게 사람의 삶과 언어를 바꾸고 인과관계가 어떻게 삶으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서양과 동양의 철학은 연구한 철학자답게 땅, 물, 불, 바람의 4요소를 중심으로 각각의 감정을 12개씩 모았다.  각각의 감정에는 대표되는 감정이 드러난 고전 작품을 설명하고,  주요 대목을 실었으며, 작품을 쓴 작가의 삶과 작품의 관계에 대한 설명, 철학자의 어드바이스에서는 작가의 설명을 덧붙였다. 

 

    48개의 감정은 다음과 같다. 흔히 아는 감정들도 있으나 음주욕, 탐식, 과대평가와 같은 단어들도 욕망과 결부하여 감정으로 간주한 것이 특이하다. 작가가 감정을 다루기로 하면서 최대한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기 위해 수집하다 보니 생긴 일로 보인다.  음주욕, 탐식, 과대평가는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땅의 속삭임(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반감, 박애, 연민, 회한), 

-물의 노래(당황, 경멸, 잔혹함, 욕망, 동경, 멸시, 절망, 음주욕, 과대평가, 호의, 환희, 영광),

-불꽃처럼(감사, 겸손, 분노, 질투, 적의, 조롱, 욕정, 탐식, 두려움, 동정, 공손, 미움),

-바람의 흔적(후회, 끌림, 치욕, 겁, 확신, 희망, 오만, 소심함, 쾌감, 슬픔, 수치심, 복수심) 

 

   에필로그에서 '편견. 감정은 순간적이어서 맹목적으로 따르면 위험하다(509p)'는 편견을 첫 문장으로 제시한다.  무지개보다 다양하고 찬란한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도 하건만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미덕인양 살게 했던 유교 문화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숙을 얻었다는 것 아닐까요?...... 감정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감정이 없다면 삶의 희열도, 삶의 추억도, 그리고 삶의 설렘도 없을 테니까요.(p.6)'이미 답을 제시한 내용이기도 하다. 흔히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라고 충고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감정이 일어난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고, 그 감정을 바라보면 자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 저자의 말이 아니고 고전 문학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위대한 문학은 하나의 감정을 깊게 파고들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위대한 작품은 하나의 감정이라는 자장에 모든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포섭시킨다.'(p.516) 작가의 철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통찰이 융합되어 완성된 책이다. 거기에 스피노자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감정에 대한 묘사는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 '자긍심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p.40)-스피노자 <에티카>중에서- 라는 식이다.  스피노자의 감정은 기쁨 또는 슬픔으로 귀결된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반기고, 나를 슬프게 하는 일에서 물러서고 싶은 게 인간임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분류했다고 본다. 

 

  수시로 잔물결처럼, 혹은 파도처럼 일어나는 감정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이 책에서 그 파도와 잔물결, 윤슬들의 이름이 밝혀진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걸 아는 기분은 당황이다. 이 또한 감정이다.  내 안에서 출렁이는 감정들이 올라올 때 '이건 이름이 뭐지?'하고 생소하게 바라보면 의외로 재미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감정이 달라진다.  지나친 감정이 반복되어 계속된다면 환경을 바꿔야 할 때일 수 있다.  나는 지금 자유를 꿈꿀 수 있으니 환경 탓은 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