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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나는 유령 작가 입니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6. 21. 21:49

  작가 김연수는 경북 김천 출생이며 대학에서 영문학과를 전공했다.  책의 제목을 <나는 유령 작가입니다>라고 정했는데 단편과 중편을 실은 이 작품집에 같은 제목의 글은 없다.  소설가 자신이 쓰는 작품은 인정하되 자신의 정체성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아직 찾는 중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부단히 모색하고 있는 중임은 알 수 있다.  

   이 책 말미에는 해설이 붙어 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라고 제목을 달았다.  웬만한 소설에는 해설이 붙지 않는 법인데 소설이 난해하여 무언가 설명을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출판사의 불안감이 해설을 붙이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해설에서 '김연수는 역사는 믿을 수 없고, 인간은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며 세계란 결렬과 죽음의 것들로 이루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엄숙성이 삶이라고 인식하며 세계에 대한 불신과 인간 이해의 불가능성으로 세상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덧붙여 이 시대의 쌍벽을 이루는 소설가인 김영하에 대해서는 '세계에 대한 절망적 자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문학적 이력을 시작하였다'라고 묘사한다.  

 

 작가는  책의 맨 뒤에 실은 '작가의 말'에서 '언제라도 '나'는 '나'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까닭은 그 '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읽은 많은 책들이 이 소설집에는 숨어있다. 하지만 그게 부질없다는 것을 안 이상, 어떤 책을 읽었는지 밝히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 책들을 통해 '나'보다 더 심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을 위안으로 삼는다.'라고 썼다. (309p)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에서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거짓말이 들통나는 게 아니라 들통난 것들이 거짓말이 된다."(49p)는 작가의 문장은 작가의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을 보여준다. 거기에 더해 조르주  뒤비(역사학자)의 말을 빌려 "삶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불리한 입장에 놓인 역사가와 같다. 하찮은 사실들은 어쩔 수 없이 엄숙하고도 중요한 양상을 띠게 된다.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한다.  "인생이란 그저 사소한 우연의 연속이고 거대한 물음표다."(230, 233p)의 말처럼 작가는 역사의 한 순간이 비껴갔다면 이름만 달라질 뿐 결과는 같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쏘지 않았다면 우덕순이 채가구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고 역사의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같은 물음은 누구도 비틀지 않는 질문이지만 그 질문을 김연수 작가는 끊임없이 나름의 불빛을 켜고 자신만의 색으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뿌넝숴(不能設)>, <거짓된 마음의 역사>,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 등 9개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헤어지고 잠깐 다시 만난 연인의 이야기,두 자매와 한 남자의 이야기, 전쟁 속에서 있었던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삶의 이야기, 멀리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조선시대, 일제 침략기, 6.25 전쟁,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인의 유전자에 기록된 이야기, 한국인만 아는 이야기를 잊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쓴 이야기로 읽었다. 김연수 작가의 시선은 날카롭고 온전히 붙들고 있는 '삶의 무게'는 무겁고 깊이는 깊어서 헤아릴 길이 없다.  그래서 웬만하면 한 번에 한 편 읽고 미뤄두었다 또 읽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전쟁을 겪지 않고 이 땅에서 최대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시대에 살면도 이만한 철학으로 삶을 파헤치는 용기와 인내심을 가진 작가가 몇이나 되겠는가? 이 땅에서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그림자처럼, 유령처럼 사는 사람의 삶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문 소설가를 만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