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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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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8.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2. 28. 10:41

열흘 전에 남해군, 하동군에 다녀왔다. 봄이 오는 바다, 다랭이 마을 어귀에서 겨울 시금치 파는 할머니, 밭둑에 피었던 흰 매화, 그리고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안채 마당에 핀 붉은 매화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찍이 봄을 맞이하고 다시 북쪽으로 돌아와 지낸 열흘은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로 채워졌다.  방학을 마치고 다들 건강하게 돌아와 제자리를 찾아 충전된 모습으로 계획을 세운다. 저들의 일이 잘 풀리는 게 나의 안위를 보장한다. 그러니 내가 저들을 도와 충분히 준비하고,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역할이야 어떻든 조직에서 자신이 맡은 분야를 훌륭히 소화해 내는 사람이 있어 그 조직은 건강하게 유지된다. 

 점심 먹고 본관 뒤에 있는 매화 나무 세 그루를 돌아 보러 갔더니 여전히 작게 꽃봉오리를 맺고 있을 뿐 팝콘처럼 터지려면 열흘은 넘게 남아 보인다. 매화를 뒤로 하고 운동장 서쪽 화단에 있는 산수유 두 그루를 만나러 갔더니 산수유는 매화보다는 꽃봉오리가 매화보다 컸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따뜻한 보건실 앞뜰에 가 보니 지난해 심은 매화 나무 두 그루 중 하나는 갈색, 하나는 초록빛으로 줄기가 다르다. 아마도 하나는 추운 날씨를 못견디고 죽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봄이 오는 걸 아는 녀석인지 두고 봐야겠다.  "어라! 저건..... 큰개불알꽃이 피었다! " 그것도 화단 바닥을 가득 채우도록 피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매화에서 찾았더니 더 낮은 곳에 봄이 와 있었다. 큰개불알꽃은 상스러운 이름으로 들리는데 꽃은 작고 아담하며 청보라빛을 띄는 게 앙증맞다. 큰개불알꽃의 이름을 봄까치꽃이라고도 부르고, 중국에서는 지금(地錦, 땅의 비단)이라 부르고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꽃이라는 꽃말을 가졌다고 한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은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불교의 용어다. 요즘은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로 쓰인다. 우리가 맺는 인연이야말로 시절인연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영원해 보여도 결국 이 순간만 함께 할 뿐 영영 함께 있지는 못한다. 봄이 온 걸 봄까치꽃에서 찾았다. 저들의 봄이 나의 봄과 함께 있다. 아름다운 순간에 내가 있다. 

봄까치꽃(큰개불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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