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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흙.바람 +나
2022. 9. 22. 본문
주말에 이어 지난 5일 동안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봤다.
염미정이 술에 절어서 폐인처럼 사는 구씨에게 말한다.
"할 일 없으면 나를 추앙할래요? 사랑으로는 안돼, 나를 추앙해요."
"추앙?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
"응원해요. 잘할 수 있다고 마음으로 응원해요."
염미정이 다니는 회사에는 '행복지원센터'가 있다. 모든 회사원이 어떤 동아리든 1개 이상 가입하도록 회사에서 지원한다. 문제는 1인 1개 이상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세 명이 있다. 그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행복지원센터'에 불려 가서 동아리 가입을 독려하는 말을 듣지만 가입하지 않고 버틴다. 이유는 다양하다. '집이 멀어서 퇴근 후 시간이 없다. 아이가 있다. 근무 시간에 지겹도록 본 사람을 동아리에서도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계속 행복지원센터에 불려 가던 중에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더 이상 동아리 가입을 종용당하지 않기 위해 동아리를 만드는 방법으로 해결 방안을 찾는다.
"우리가 동아리를 만들까요?"
"왠만한 동아리는 다 있을 텐데, 뭘 만들지?"
"해방 클럽 어때요?"
"뭐로부터 해방되는 건데?"
"우리를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해방 클럽'에 가입한 세 사람은 '해방 일지'를 쓰기로 한다. 무엇이 자신을 무언가에 갇히게 했는지를 관찰하고 그걸 서로 나누는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지는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일지를 쓴 이유는 뭔가 기록을 남겨야 동아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회사의 방침 때문이었지만 결국 해방 클럽의 활동은 출판사의 출판 제의를 받기에 이른다. '해방클럽'에는 강령이 있다. 1. 행복한 척하지 않는다. 2. 불행한 척하지 않는다. 3. (자신을) 정직하게 보겠다. 부칙은 조언하지 않는다, 위로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 빠져 지내다 보니 염미정의 관점, 구 씨, 염기정, 염창희, 엄마, 아버지 등 등장인물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끌린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데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말이 입에 착착 붙는다. "그래, 끼리끼리 는 과학이지. 틀린 적이 없어. " 압력솥에 쌀을 씻어 안쳐놓고 식탁에 앉아있다가 방에 들어가서 누운 엄마가 그 길로 돌아가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아, 저럴 수도 있구나. 멀쩡하게 딸의 남자 친구를 엿보고 시장에 들러 장을 봐 온 후에 밥을 하던 엄마가 돌아가다니......' 저게 사실이라면 자식들과 남편은 얼마나 충격일까? 사람들이 자는 듯이 죽고 싶다고 말하는 건 자신에게는 좋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남은 사람들에게는 참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해방일지>를 시작한 시점과 끝난 시점의 주인공의 관심사와 말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초반부 주인공은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회사에서 직장 사람들에게서 극도로 자신을 분리하려고 애쓴다. 친한 친구도 없고, 상사는 주인공이 일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주인공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 염미정은 '내가 어디에 갇힌 것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라는 생각이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모두 불만에 쌓여있다. 언니 염기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드라마 후반에 가면 염미정도, 염기정도 엄마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었음에도 오히려 "내가 사랑스러워요."라고 말한다. 관점이 자신을 둘러싼 타인에게서 자신에게로 옮겨온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자신을 해방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나서 나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그 답은 극 중의 아버지가 말해주었다.
"내가 자식들을 건사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식들이 나를 건사하고 있었어."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챙기고, 돌보고, 걱정해 준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교만함에 다른 사람을 탓하고 지적한 일들이 부끄럽기만 하다. 드라마에서도 배우는 게 있구나.
16부작인 드라마를 단 며칠에 보는 건 재미있기는 한데 다소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편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당분간 <나의 해방일지>를 기억할 것 같다. 주말에 드라마 정주행 해보기! 새로운 경험을 하나 더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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