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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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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10.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9. 12. 22:14

 원불교에서는 49재를 독특한 방법으로 운영한다. 불교는 돌아가신 후 삼일째 지내는 삼우제를 지내고 나서는 절의 명부전에 모셨다가 49일째 되는 날에 49재를 올리는 것으로 마친다. 본래 불교에서도 7재와 49재가 남아있었으나 대부분 바쁘다는 이유로 삼우제도 없이 장례식만 끝나고 마는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 원불교와 불교의 다른 점은 가족들이 참여하는 칠재를 지낸다는 점이다. 돌아가신 날을 기준으로 7일마다 일곱 번의 재를 지내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날을 49재로 올린다.  돌아가신 분도 갑자기 돌아가시면 세상을 떠날 시간이 필요하듯이 가족들도 슬픔을 풀어낼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면에서 49재는 의미가 있다. 49재는 불교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데 사후 세계에 간 영혼이 7일마다 생사를 반복하다가 49일이 되는 날에 다음에 태어날 삶의 형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경을 외워 영혼이 지옥, 아귀, 축생도에 빠지지 않기를 빌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윤회를 빈다. 

 

지난 8월9일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원불교당에 49재를 모시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 일곱 번을 가는 일은 모든 일을 제치고 해야 하는 일이다. 추석이 토요일이라 칠재 중 오재를 지내는 날이었다.  가족들은 일찌감치 차례를 지낸 후에 성묘를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에 원불교당에 예약한 오재를 지내러 갔다. 원불교 교당은 교회의 내부와 비슷하다. 제단이 있고, 신도들이 앉는 장의자가 앞쪽을 향해 양쪽으로 나란히 놓여 있다. 이번 오재에는 두 분의 교무님이 참석했다. 한 분은 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해 오신 분이다. 고향 마을의 교당에서 봉직하시는 분인데 아버지의 오재를 위해 참석해 주신 것이다. 감사했다. 

 

 교무님은 아들, 딸, 손자, 손녀까지 모인 이번 오재에 특별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이십 대의 조카와 딸, 아들이 들으라고 일부러 준비한 내용으로 들렸다. 그 이야기를 옮겨 적어 본다. 

전라도에 관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찌나 땅이 많은 지 근방의 땅이 모두 관철의 땅이었다. 그래서 그 땅을 사람들은 '관철네 마당'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자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병으로 죽고 만 관철은 염라대왕 앞으로 나갔다. 염라대왕은 "너는 아직 여기 올 때가 안 됐으니 다시 돌아가라. 노잣돈은 네 창고에 가서 가지고 가거라.' 했다. 관철이 염라대왕이 가리킨 창고에 가 보니 거기에는 네 개의 주춧돌과 볏단 세 묶음이 있었다. 평소에 자린고비로 베풀기를 싫어했던 관철이 친척이 집을 짓는다고 보내 준 주춧돌 네 개, 옆집 아낙이 애를 낳는다고 땔감을 빌리려 하자 볏짚 세 단을 준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것으로는 노잣돈이 모자라자 염라대왕이 그 옆에 있는 덕진지고(덕진의 창고)에서 빌려가라고 했다. 과연 덕진의 창고를 들여다보니 금은보화로 그득했다. 관철은 거기서 삼백 냥을 꺼내 노잣돈으로 마련하여 염라대왕에게 주고는 이승으로 돌아왔다. 

  죽었다 살아난 관철은 꿈인가 생시인가 했지만 덕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저승의 창고에 많은 보화를 쌓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빌린 돈 삼백냥을 갚기 위해서 덕진이를 찾아 나섰다. 봇짐을 메고 길을 떠난 관철이 저녁 무렵에 주막에 머물게 되었다. 거기서 "덕진아, 여기 국밥 좀 내와.", "덕진아, 여기도 국밥." 하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여 덕진이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국밥은 큰 그릇은 석냥, 작은 그릇은 두 냥인데 배가 고픈 사람이 두 냥을 내면 자신이 먹을 밥에서 덜어서 석냥 만큼의 큰 그릇에 국밥을 내주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손님들의 시중을 드는 덕진이 힘든 일을 힘들지 않게 해 내는 모습을 본 관철이가 덕진이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실은 내가 저승에 있는 당신 곳간에서 삼백냥을 빌려서 갚으러 왔소.' 해도 덕진이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철이 갚겠다는 삼백 냥을 받지 않으려 하자 관철이 덕진이에게 소원을 말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덕진이는 "이 앞에 개울이 있는데 평소에는 건널 수 있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나무다리가 떠내려 가서 개울을 건널 수 없으니 거기 다리를 놓는 게 내 소원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관철은 덕진이에게 주려던 돈에 자신이 돈을 보태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다리의 이름을 '덕진지교(덕진의 다리)'라 했다고 한다. 

  살면서 세상에 쌓아 놓은 돈은 죽어서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베풀고 나누는 것이 남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모으는 일 보다 베풀고 나누는 일에 힘을 쓰라.  돈이 없으면 남에게 한 번 웃어주고, 칭찬해 주는 일도 베풂이다.

 

 오재를 마치고 나서는데 교무님이 송편을 두 상자 준비해 두셨다. 가족들이 함께 나눠드시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49재를 원불교 교당에서 모시게 된 것은 매주 잊힐만하면 다시 교당에 가서 슬픔을 되새기는 일을 반복하여 다소 힘든 부분이 없지 않으나 슬픔을 제대로 승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한 분의 가족을 보내는 슬픔과 상실감은 그리 짧은 시간에 끝내 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도 49재는 필요한 절차요, 의식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시간이 되고, 내가 세상을 사는 시간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시간이다. 

 

 이번 추석은 원불교당의 오재로 마무리했다. 모두들 추석 둥근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나요? 소원은 가족들이 하는 일이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아나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소원도 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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