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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30. 본문

교육

2022. 8. 30.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8. 30. 23:07

자율과 방임의 차이

 

얼마 전에 여러 가족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때 한 아빠가 말했다.

"나는 애들 클 때 무관심한 아빠로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 "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딸이 "맞아. 아빠는 무조건 건강하게만 크라고 했어. 나는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아빠가 좋아. " 이제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살고 있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그 아빠는 딸이 자라는 걸 지켜보고 있었지만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참고 기다려 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벼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이 있다.  그런 관심을 쏟았지만 들여다 보고 잔소리는 안 했다는 뜻이리라. 

 

  무관심한 아빠, 자칫하면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 애썼다는 그 아빠의 말에는 아빠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스며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율'은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는 것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신뢰할 때 가능하다. 자율은 어느 정도의 나이나 수준에 이른 사람 혹은 집단에게 가능한 일이다. 자율을 말하려면 자녀의 성장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지켜보면서도 잔소리는 하지 않고 한발 뒤에서 지켜 봐 주는 수준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직접 관여하고 잔소리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는 부모보다 어려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율과 한끗 차이에 방임이 있다. 방임은 자율적으로 판단하거나 행동할 수준이 아닌 사람이나 집단에게 '알아서 해!'라고 말하면서 부모 혹은 관리자가 제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자녀가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도 모르고, 한여름에 겨울 옷을 입고 다녀도 모른다면 이는 방임이 될 수 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상만 지키고 앉아서 조직원들을 칭찬하기를 즐기고,  "알아서 잘하니까 ~"식의 말을 반복하는 조직의 상사는 자율이 아니라 방임일 수 있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일 가능성이 크다.  

 

 자율과 방임은 한 끗 차이지만 그 바탕에는 관심과 무관심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자율을 말하려면 적어도 부모는 자녀에 대해, 관리자는 조직과 조직원에 대해 속속들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율이라고 말하면서도 부모 혹은 관리자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자율을 선택했다면 이는 분명히 자율이 아니고 방임일 것이다. 그건 자신의 위한 편의를 택한 것이지 자녀 혹은 조직을 위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무관심을 택한 결과라는 점이다. 

 

 무관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아빠가 딸에게 칭찬을 들은 것은 결과적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딸에게 칭찬을 받는 아빠는 드물다는 점을 말할 필요가 있겠다. 왜냐하면 아빠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면 딸은 그동안 마음이 멀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가 아는 이 부녀는 앞으로도 케미좋은 부녀로 지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