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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기억(1)-2022.8.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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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기억(1)-2022.8.8.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8. 21. 17:20

살아있는 사람의 가장 큰 일은 죽음을 맞닥뜨리는 일이다.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죽음일 것이요, 두 번째 큰 것은 가족의 죽음일 것이다.  지난 2022. 8. 8. 부터 나에게 일어난 죽음에 관한 일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2022년 3월 이어령 교수의 죽음이 나에게 큰 화두를 준 이유가 여기에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의 통찰력으로 미리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기록하고자 한다. 

 

 2022. 8. 7. 일요일에 늘 일찍 잠자리에 들던 다른 날과 달리 늦게까지 깨어 있어서 딸이 "엄마 웬일로 아직 안 자?"라고 물었던 게 기억난다.  8.8.로 넘어가던 0시가 지나자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후에 전화 통화할 때 배가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말씀하셨던 아버지가 당장 장꼬임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전에서는 외과수술을 하겠다는 병원이 없어 알아보는 중이라는 병원 측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병원에 연락해서 물으니 대장 수술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수술했던 병원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니 가장 가까운 병원을 알아봐 달라, 앰뷸런스가 출발하면 나도 그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기다리니 천안에서 응답한 병원이 있다고 한다. 이전에 여러 차례 병원 입원과 간호를 해 본 경험상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컵, 담요, 치약, 칫솔, 슬리퍼, 수건 등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그 와중에도 다음날 복무를 어찌 처리할까를 생각하고 '연가'를 작성하여 결재를 올려두었다. 밤이 늦었으니 사정 내용은 다음날 아침에 상사에게 연락을 하기로 하였다.  

 

 새벽 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도로에 차가 많이 있어 놀랐다.  천안은 1시간 거리인데 고속도로는 자주 다닌 길이라 쉬이 운전할 수 있었다. 반면, 시내는 가로등만 켜진 상태라 네비게이션에 의지하여 길을 찾는데 낯선 데다 사람도 없는 유령도시를 지나는 기분이었다.  간신히 병원을 찾았으나 건물 한 동만 보이는지라 생소하고 의구심도 컸다.  이 병원에서 왜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을까? 주차장도 문을 닫아걸었으나 좁게 열린 틈으로 들어가 주차를 하고 응급실에 들어가 물으니 아직 앰뷸런스는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앉아서 기다리라는 직원의 말을 들었지만 안절부절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렸다.  2시가 넘어서야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고 구급차가 응급실 쪽으로 들어왔다.  문을 여니 침대에 누운 아버지와 입원 준비 가방들을 들고 한 손에 지팡이까지 든 어머니가 보였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집에서 가까워요." 그러는 사이 응급차에 타고 온 직원이 입원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먼저 접수를 하라고 한다.  접수를 하니 선금으로 응급실 진료비를 15만 원 내라고 한다. 수속을 마치자 응급실 안으로 침대를 옮길 수 있었다.  이전 병원에서 가지고 온 CT 자료를 보고 담당의사가 기다리라고 한다. 

  그 사이 맏딸인 언니와 형부가 도착했다.  밤길에 초행인 길을 오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아픈 아버지를 만났다. "수술을 해도, 안 해도 힘들다고 하니 죽으나 사나 수술을 해야지."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러자고 하고 있는데 외과의사가 언니와 나를 불렀다. 

"아버지가 91세이신데 얼마나 더 살기를 바라세요? 장꼬임은 장폐색으로 발전해요. 물만 먹어도 토하고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장이 썩어서 그 부분을 잘라야 합니다.  다만 어르신은 심장 스탠트 수술 경력도 있고, 연세가 많아서 수술하는 도중에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수술을 해서 아물어도 장이 썩으면 다시 열고 재수술을 여러 번 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수술입니다. 만약 외과의사인 내게 위암 수술과 장폐색 수술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위암 수술을 선택할 겁니다. 그만큼 이 수술은 어려운 수술입니다. 내가 외과의사 24년 경력입니다....." 

뭐라고 말해도 새벽 3시에 놀란 나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아서 메모지와 볼펜을 빌려 기록을 하려 하니 의사가 나를 돌아보고 "뭘 적느냐?"고 묻는다. 나는 담당의사 이름만 겨우 적고 있었다. 

 

"자, 그럼 바로 수술 들어갑니다. "

"선생님, 아버지가 연세가 많은데 마취에서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걱정마세요. 우리 병원에 마취과 선생님들 실력 좋은 분들입니다. "

"그럼, 수술 잘 부탁드립니다. "

 

"자, 가족 분들 침대 한쪽씩 붙잡고 같이 밀어주세요." 수술실로 침대를 밀어주는 역할을 하는 직원이 알려준다. 옆에 서서 "아버지, 수술하면 괜찮아진대요. 걱정 말고 수술 잘 받고 나오세요."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알았다. 걱정마라. 죽으나 사나 수술은 해야 한다니 해야지. " 그 말이 전부였다.  수술은 최소 3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하였다.  위험한 고비일 수도 있어 나머지 형제들에게도 전화로 알렸다.  오빠는 당장 병원으로 오겠다고 하고, 동생은 차가 없으니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수술 1시간이 지났을까,  보호자 한 사람만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언니보다 낫겠지 싶어 들어가니 개복을 한 상태에서 장을 보여준다. "색은 변했어도 다행히 썩지는 않은 정도다, 나머지 부분도 살펴본 후에 다시 알려주겠다."라고 했다.  난생처음 본 광경이니 의사의 설명에 "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0분쯤 후에 다시 보호자를 불렀다. 이번에는 언니가 들어갔다. "생각보다 장이 마비되지 않았고, 깨끗하니 관을 꽂아서 장에서 이물질이 흘러나오는지 경과를 지켜보자. 이물질이 나오면 장 천공이 생긴 거라서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행히 수술을 서둘러서 그런 것 같았다.  

 

 수술 끝나고 회복실이 아닌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연세가 많아서 중환자실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환자실 앞에 있으니 오빠가 도착했다.  잠시 후 가족 면회도 가능하다고 하여 중환자실에 들어가니 산호 포화도가 낮아서 목에 산소호흡기를 달았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눈은 뜨고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났대요." "추우세요?  담요 덮어드릴까요? "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께 담요를 한 장 덮어 드리는 게 전부였다.  "우리 밖에서 기다릴게요." 짧은 면회는 끝났다. 

 혹시 모르니 오전만이라도 병원에서 기다리자고 하고 대기를 했다. 그사이 회사에 연가 신청한 걸 알리고,  아침도 간단히 먹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웠으니 멍하기만 하다.  다행히 어머니는 형부가 모시고 집으로 출발했으니 형제들만 남았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연세 많은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병원으로 가니 환자가 가득 찼다. 어젯밤 유령병원이 아닐까 의심한 나의 생각이 무색하다. 일반외과 앞으로 가서 면담을 신청하니 간호사가 들어오라고 부른다.  의사는 분명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데 읽고 있는 책 밑에는 '종자기능사 자격시험'책이 있고,  책꽂이는 오래된 책과 안 쓰는 기계들이 있다.  신은 신발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 청소는 언제 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의 방이었다. 

"선생님, 수술은 잘 되었나요?"

"잘 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요."

"수술 전에 말씀하신 것보다 경과가 좋다고 한 거 아닌가요?"

"아니요, 환자 분 연세가 많으시니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속 계셔야 하나요?"

"경과가 좋아지면 일반 병실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

"네, 저희 아버지 잘 부탁드립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 였다. 의사는 자기 방어만 반복할 뿐이었다. 우리는 면회를 한 사람만 할 수 있다고 하니 하루씩 번갈아가며 병원에 오기로 하고 일단은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귀촌을 한 언니가 집으로 편히 갈 수 있게 대전 복합터미널에 내려주고 올라오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오늘 길에 상사에게 있었던 일을 보고하니 내일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연가를 쓰라고 한다.  나는 별일이 없으면 내일은 일단 출근을 하겠다고 말했다.

 

  집에 와서 생각이라는 걸 해 보려니 꼭 뭔가에 홀린 듯 하고, 그 병원에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트루먼쇼>의 모든 사람들이 트루먼을 속이듯이 그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속이는 것 같아서 내가 못 쉬어서 예민한가? 하고 물으니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편히 생각해."라는 말을 돌려받았다. 시골의 어머니와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도 피곤한 몸을 쉬이 쉴 수 없어 평소 하던 대로 플루트를 불고, 글쓰기를 하고 책을 읽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