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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인생은 아름다워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6. 19. 22:26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다운 인생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지혜

 

  "뚱보에 못생기고, 노란색을 달고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 날 따라오면서 똥을 싼다. 나는 누구일까?"  이 영화의 후반부에 의사가 주인공 귀도에게 물어보는 수수께끼다. 답은 무엇일까? 의학박사로서 수용소 군의관으로 일하는 레씽이 말한 수수께끼는 귀도와 가족들을 살려줄 수 있는 단서가 되지 못한다.  귀도는 독일군이 패망하여 수용소를 떠난다는 소식에 아내와 아들을 챙기려고 여장을 하고 수용소를 누빈다. 아들은 철제장에 숨기고, 아내의 행방은 찾지 못한 채 총성을 남기고 사라진다. 다음날 수용소에 연합군의 탱크가 도착하고, 철제장에 숨어있던 아들은 아빠가 말한대로 게임에서 이겨서 탱크가 온 걸 기뻐한다. 탱크를 타고 게임의 승리를 즐기다가 엄마를 만나서 1000점을 받고 게임에 승리한 것을 축하한다. 이 모든 것은 아빠 귀도가 아들 조슈아를 살리기 위한 유머와 재치의 노력이었다. 

영화 초반 자막으로 나오는 문장은 이 이야기를 요약한다. 

"간단하지만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동화처럼 슬프고 놀라우며 행복이 담긴 이야기다."

 

 주인공 귀도는 1930년 말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경제사정이 어렵고, 파시즘 폭력이 횡행하는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작은 도시 아레초에 도착한다. 그는 유태인이었고, 친구와 시골에서 상경하여 숙부의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을 배우는 중이다. 그런 그가 상류계층의 초등학교 선생님 도라를 흠모한다.  도라는 소꿉친구와 약혼한 사이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공주님' 도라를 향한 사랑은 도라가 부모님을 대신하여 귀도를 선택하게 한다. 도라와 아들 죠수아와 함께 살아가던 귀도는 '수정의 밤'의 잔인한 학살 행위의 희생자가 되어 결국 수용소로 끌려간다. 

  '수정의 밤'은 1938.11.9. (이미 독일 인근의 유대인들이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독일 외교관이 총격으로 사망한 소식에 분노한 나치의 선전 미화 담당인 괴벨스가 "시위는 허가하지 않지만, 자연발생적인 분노의 표출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날이다. 이후 '유대인은 상점과 집을 파괴할 것, 유대인 에배당은 주변에 불이 번질 염려가 없으면 소각할 것, 경찰은 시위를 저지하지 말 것, 부유한 유대인은 우선 순위로 체포할 수 있는 만큼 체포할 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수수께끼는 인생을 담고 있다. 

독일의 의학박사인 레씽이 웨이터인 귀도와 주고받는 수수께끼를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레씽은 귀도를 그저 웨이터로만 생각할 뿐, 수용소에서 군의관과 수용인으로 만났을 때 그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자신의 입장을 알릴 뿐이다. 수수께끼는 그에게 호기심의 열쇠일 뿐일 수도 있다.  귀도와 레씽은 수수께끼만 나누었을 뿐, 도움을 주고 받을 친구는 아니었다.  

"많은수록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이미 그곳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 침묵"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사라지나 인간이 갖기를 원하는 것은? 희망"

"백설공주가 일곱난장이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7초"

"겉으로 눈물 흘리면서 속타는 것은? 촛불"

 "뚱보에 못생기고, 노란색을 달고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 날 따라오면서 똥을 싼다. 나는 누구일까?"

 

귀도는 긍정의 화신인가?

 가난한 귀도는 상류계층의 딸과 결혼을 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언제나 희망적인 삶을 산다. 유대인이라는 인종주의에 위협을 느끼면서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상점 앞의 표지판을 보고 내용을 묻는 아들에게 '우리도 금지할 것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귀도는 사람을 향해 차별을 행위하지는 않는다. 

그가 수용소에서 아들을 업고 가면서 하는 말은 그의 속마음을 그대로 전한다.

"이건 꿈일거야. 전부 꿈일지도 몰라. 꿈이 깨면 도라가 아침에 우리를 깨우고 쿠키와 따뜻한 우유와 커피를 준비해 줄거야."하는 혼잣말은 그의 희망이기도 할 것이었다.  사람들을 용광로에 태워 비누를 만들고, 단추를 만든다는 소문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하는 수용소 생활에서 귀도라고 무섭지 않았겠는가? 아들과 자신을 따라 유대인이 아님에도 자발적으로 수용인이 된 도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게임에 이겨야 한다고 아들을 설득하고, 동시에 자신을 설득하면서 희망을 키우지 않았을까?

 

"뚱보에 못생기고, 노란색을 달고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 날 따라오면서 똥을 싼다. 나는 누구일까?"  궁금하여 이 답이 무엇일지를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뚱보에 못생기고, 노란색을 달고 있는 건 히틀러, 누구냐고 물으면 꽥꽥꽥하는 건 서양에서 오리를 나쁜놈이라 표현하는 걸 의미한다, 똥을 싼다는 건 낭패를 본다는 의미다. ' 결국, 레씽이 하고 싶은 말은 '히틀러는 나쁜 놈이고, 망했다.'는 말을 귀도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귀도는 그걸 알아들었고,  그래서 독일군이 허둥지둥 뒤처리를 하고 수용소를 빠져나가려 하자 불안한 나머지 아들을 숨기고, 아내의 행방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어디선가 불쑥 다시 나타날 것 같은 귀도의 생존 교육 방법은 '진심'과 '의미'였다. 

  영화 초반에 도라를 흠모하면서도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숨었다가 갑자기 나타나 도라를 놀라게 해 주던 귀도, 친구가 쇼펜하우어를 언급하면서 주문을 외우라고 하자 그 이후 이루어질 때까지 주문을 외우는 여러 장면들이 나온다. 물론 이루어질 때까지 했으니 다 이루어졌다. 그런 장면이 여럿이었기에 귀도가 병사에게 끌려가고 총성이 들렸지만  도라와 죠수아 앞에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여운이 남았다. 

   귀도는 도라에게도, 죠수아에게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항상 웃는 얼굴,  상대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  할 수 있는 표현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모든 말이 진심이었다. 상대를 위한 진심이다.  수용소 안에서 도라를 위해 자신이 잘 있음을 방송하고, 음악을 들려주는 행동으로 자신의 사랑을 전한다. 

'1000점이면 진짜 탱크를 타게 된다.' 이런 허무맹랑한 게임을 다섯살 아이라고 믿겠는가? 그러나 아빠가 자꾸 말하니 아이도 믿게 되고, 말하는 아빠도 덩달아 자신의 거짓 희망을 믿는다. 그런 희망은 수용소의 생활을 버티는 버팀목이 되었다. 마치 빅터 프랭크 박사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리조각을 주워서라도 수염을 깎고, 자신의 수용소 끝나는 날을 기다렸듯이 말이다. 빅터 프랭크박사는 훗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연구했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의미요법'이라는 긍정심리학의 장을 열었다. 귀도 역시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실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언제나 위기와 고난의 연속이다. 

그러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 필요는 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결국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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