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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2021-57번째)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12. 26. 21:45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이반 일리치와 <누가 나를 쓸모없게 하는가>의 작가 이반 일리치가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이다.  여름에 책을 사달라고 사서 선생님께 요청하고 다른 일에 밀려서 잊고 있었던 책인데 연말이 되니 생각이 났다.  사서 선생님께 물으니 구입은 했으나 서가에서  찾지 못하겠다고 한다.  찾으면 다음에 받기로 하고 주차장까지 나왔는데 사서 선생님이 책을 찾아서 들고 주차장까지 뛰어나오셨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하니 "이게 제 일인걸요."라고 답한다.  이런 감동은 살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장면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내용은 너무나 간단하다. 판사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간다. 죽음을 거부하고 가족들을 증오하지만 결국 용서를 구하고 평화롭게 죽어간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톨스토이가 왜 대문호인가를 알 수 있는 문장들이 너무나 많아서 책장마다 스티커를 붙이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두 장을 붙여 놓았다.  러시아어로 쓰인 문장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변질될 수 있는 내용들이 얼마나 잘 전달되고 있는지 알 수 있기도 하다.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그가 일하던 법원에 전해지면서 소설의 1장이 시작된다.  등장인물들의 생각에 대한 묘사가 깊이 있고, 정확하고 냉철하게 짚고 있어서 때로 놀랍기도 하다.  

'동료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 등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겠어, 죽었는데. 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있잖아.' 그들 각자는 이렇게 생각하거나 그런 느낌을 가졌다. (p.10)

' 이 사건이 오늘 밤 우리가 즐겁게 보내는 걸 방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대체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지요.'(p.14)

'사흘 밤낮을 끔찍하게 괴로워하다 죽었다. 언제든지, 지금 당장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서늘한 두려움에 순간 몸서리쳤다. 하지만 곧바로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그건 이반 일리치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다. 자신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들었다.(p19)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면서 평범한 것이었다. 항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마흔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p.23) 이것이 이반 일리치라는 사람에 대한 평이다. 톨스토이가 바라보는 공무원에 대한 판단인 셈이다. 특히 이반의 아버지에 대한 내용은 매우 비판적이다. '어떤 중요한 직무수행 능력을 딱히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저 오래 그 일을 해왔고 직금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나지 않고... 그런 부류의 관리들을 위해 꾸며낸 가공의 자리들을 꿰차고 앉아서는 보통 6000 루블에서 10000 루블에 이르는 국고를 꼬박꼬박 챙겨가며 늙어 죽을 때까지 버티게 마련이다.(p23-24)

 

결혼은 어떻게 했을까? 결혼생활은 이반에게 어땠을까?

'이반 일리치가 결혼하게 된 것은 두가지 사항을 고려해서였다. 우선 쁘라 스꼬비야 표도로브나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 자만심이 채워졌고, 동시에 고위층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일을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p31)

 '그러나 아내가 임신하고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불쾌하고 힘들고 별로 품위도 없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고 어떻게 벗어날 도리도 없는 그런 사태였다.'.... 다만 그럴수록 가정을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혀갔을 뿐이다.'(p33) ' 그는 결혼생활에서 아내가 해줄 수 있는 것으로 따뜻한 식사와 집안 관리, 잠자리 등 딱 세 가지 편의사항만을 기대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나마 가정의 품격을 잘 지켜가는 것이었다.(p34)

 

 이반은 어떤 힘으로 살았을까?

이반은 5000루블 연봉이 주어지는 자리를 찾아 나섰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원하는 보직을 얻는다. 새 임무지로 이사가서 집을 장만하고 집안을 꾸미는 일을 혼자서 주도하면서 심지어는 법정에서도 집안 꾸미기에 정신을 팔 지경이었다. 가구의 위치를 바꾸고, 커튼을 바꿔 달고, '사실 부자는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비슷비슷하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로 집안을 꾸미고, 도무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도배공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으나 다행히 창틀에 튀어나온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쳤지만 통증은 새로운 집 꾸미기와 이사 등에 묻히고 잊힌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반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작이었다. 

 

 이반은 어떤 인간관계를 갖고 있었을까?

''집안을 꾸미는 데 너무나 공을 들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뭐가 훼손되기라도 하면 속상해 견길 수가 없었다. (p45)

공무 외에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도 맺지 말아야 하고 설혹 어떤 관계가 발생할 동기가 있다 해도 그 동기 역시 공적인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 역시 공적인 것이어야 했다. 뭔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떠난 일반인으로서는 그 사람과 그 어떤 사적인 관계도 맺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 직원이고, 특히 공문서 결재상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완전하게 다 해주었다. 하지만 공적인 관계가 끝나면 다른 모든 관계도 깨끗이 정리했다. (p45-46) 공적 업무에서 느끼는 기쁨은 자존심을 채워주었고, 사교계 생활에서의 기쁨은 허영심을 채워주었다. (p48)

 

병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이반은 어떻게 변해갔는가?

이반이 가끔 입안에 이상한 맛이 돌고 배 왼쪽이 조금 불편하다가 옆구리가 묵직해지고 아주 불쾌한 증상이 생기자 짜증이 심해지고 아내와 다투기를 반복한다. 아내의 권유로 병원을 방문한다.  의사는 신하수증, 맹장염, 만성대장염 등을 추측할 뿐 이반에게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는 말 뿐이다. (p55) 조금이라도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금세 실의에 빠지고 만다. 자신에게 불평하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자신에게 불쾌하게 굴며 자신을 파별로 몰아가는 자들을 향해 증오를 퍼부으면서도 그런 증오심이야말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라는 점을 느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p57) 점점 병세는 악화된다.  '이젠 법원 일도 그를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방편이 되지 못했다. 죽음이란 놈이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p74) 그는 서재로 돌아가 자리에 누워 다시 혼자 죽음과 대면해야 했다. 죽음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젖어들 뿐이었다. (p76)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던 중 어떤 때에는 사실대로 고백하기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p84)

혼자 있으면 견딜 수 없이 끔찍하게 외롭고, 누군가를 부르자니 다른 사람이 곁에 있으면 상태가 더욱 악화된다는 것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p89)

 

주변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가 보기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의식을 그저 있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일, 특히 조금 품위가 없는 일 정도로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 지키려고 애써 온 '품위'라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안타까워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p83) 그의 상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오직 게라심(부엌하인)뿐이었다. 어떤 때는 잠자지 않고 거의 밤새도록 그의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p83) 그녀가 남편을 위해서 한다는 일은 모두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이런 일을 정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의사를 두 사람을 불러서 공동 진찰하고 의견을 나누도록 하겠다고 말한다.)(p93)

 

죽음의 과정에 대한 표현은 어떤가?

그는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어딘가 좁고 컴컴하고 기숙한 자루 속에 집어넣으려고 자꾸만 밀어대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p100) 게라심이 옆방으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없는 무력감과 끔찍한 고독이, 사람들과 하느님의 냉혹함이,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p100) 그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영혼의 목소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생각의 흐름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네게 필요한 게 뭐냐?'....'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난 정해진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 모든 것이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기만이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다.(p112) 이반 일리치는 크고 작은 고함을 계속 내질렀다. '니 하 추 우(난 죽고 싶지 않아!)'(p115) "그래 모든 것이 잘못되었었다., 하지만 괜찮아. 어쩌면 아직, 아직 '그걸'할 수 있어. 그런데 '그게' 도대체 뭐지?"(p116) 바로 그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고 입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아들과 아내가 울고 있었다. "데리고 나가... 불쌍해. 당신도..."그는 쁘로스찌(용서해줘) 그는 '쁘로스찌(용서해줘)라고 한마디 더 붙이고 싶었지만 '쁘로뿌스찌(보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말을 바꿀 힘도 없어서 손을 내저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을 것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곁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의 공포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p119)

 

 톨스토이가 그린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56세가 되던 해인 1886년에 썼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추구하던 삶을 그대로 살았던 상류층의 판사인 이반이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난 정해진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 모든 것이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기만이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다."라고 표현된 이 대목에서 톨스토이가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다.  귀족 출신이지만 농민학교를 세우고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삶을 살았던 톨스토이는 그때 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은 2021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같은 깨달음을 전한다. 

 어쩌면 우리가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아파트, 자동차, 주식,  대기업, 대학, 스펙, 명예 등등의 허영과 자존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들이 삶과 죽음을 가려버리는 하나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기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정해진대로 사는 삶이 잘못된 삶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하는 물음도 생긴다. 

 

  또 하나의 깨달음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묘사이다. 마치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병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놀랍다.  태어남도 혼자지만 죽음의 과정도 오롯이 혼자 겪을 수밖에 없음을 이반의 죽음을 통해 전달한다. 아이처럼 위로받고 싶고, 외롭고, 고독하게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살다가 울부짖으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이 세상의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죽음이라는 명제가 앞에 있음을 말해준다. 

 

 쉽게 서평을 쓰지 못하고 여러 날 묵혀두었다가 글을 쓴다.  무거운 주제를 섬세하게 그려내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끝까지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명작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중편으로 얇게 편집이 되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누구에게나 권한다. 특히 삶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미 우리는 부족한 게 없지만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산다고 말하면서 우울증에 빠져서 사는 건 아닌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반처럼 공적인 관계로만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일을 도피처로 가족과 적당이 멀어져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묻는다.  당신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