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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서평]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본문
책정보, 로기완을 만났다 : 네이버 책 (naver.com)
도서관에서 낯선 책을 발견했다. <로기완을 만났다> 로기완이 누구일까? 내가 아는 사람인가? 요즘에 뜨는 젊은 세대 중 한 사람인가? 아니면 외국에서 귀화한 사람인가? 궁금증이 인다. 다행히 중편정도라서 부담이 없다.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느라 어수선한 마음이 이는 지금에 적합한 책이다.
2010년 12월 7일 화요일부터 30일 목요일까지 벨기에 브뤼셀에서 2007년 12월 4일 화요일 아침 6시에 도착한 로기완의 행적을 따라가 보고 그 갈피마다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언제 로기완을 만났을까? 이 이야기에는 로기완을 만난 이야기는 없다. 만나러 가는 이야기만 있다. 로기완의 흔적을 찾아 브뤼셀의 거리를 걷고, 호스텔을 가 보고, 성당과 맥도널드에 가 본다. 브뤼셀은 어떤 도시일까?
로기완은 북한에서 탈출하여 중국의 연길로 다시 연길에서 독일의 베를린으로 베를린에서 다시 벨기에의 브뤼셀까지 살기 위해 가야 했다. 거기서 다시 런던까지 그의 삶의 행로는 이어진다. 살아서 삶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그의 숙명이다.
작가는 두 가지 음악을 선물한다. 하나는 라흐마니노프의 <보깔리즈>, 또 하나는 밥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다. 벨기에의 12월과 잘 어울리는 음악인 라흐마니노프의 <보깔리즈>는 안나모포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다시 바이올린으로 다음은 첼로로 들어본다. 역시 겨울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음악이기도 하고, 동명의 영화가 1998년에 상영되었다. 주인공에게 위로가 되어 준 음악이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소설에서 "그의 성은 로, 이름은 기완, 스므살, 169센티미터의 단신, 47킬로그램의 마른 몸, 영어 뿐 아니라 벨기에의 공식 언어인 프랑스어나 네델란드어도 습득하지 못한 채 멀고 먼 가난한 나라를 혼자 떠나온 사람"으로 소개된다. 한 사람을 소개할 때 그 사람의 정체성과 절대적인 존재감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삶의 부분적인 단서가 될 수 있어도 생애 전체를 관통하지는 못하는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나무둥치에 주저앉은 날개가 젖은 새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라고 작가는 우리 삶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이 소설에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얽힌다.
먼저 로기완이다. "살기 위하여 살아왔을 뿐인데 고향을 떠나온 순간부터 쫓기고 숨어야 하는 범법자가 되어야 했고 떄로는 한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었던 것까지 송두리째 잃어야 했던 그 불가해한 시간들을 로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76P)" 철저하게 삶을 살기 위해서 벨기에까지 왔고, 난민 신청을 받아서 비로소 안전한 삶을 찾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안전한 삶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 사람이다.
두번째는 작가이자 주인공이다. TV 프로그램 시나리오 작가로 어려운 처지의 가정을 화면에 담고 애절한 글로 시청율과 시청자 참여로 도움의 손길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윤주라는 아이의 방송을 늦춰 도움의 손길을 늘리려 했는데 그동안 병이 악화되었다.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괴롭기만 하다.
세번째는 북한 출신으로 한국에 살다가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어렵게 의사가 되었으나 부인의 안락사를 도운 후 괴로움에 의사 역할도 저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박윤철박사다.
로기완은 한국대사관에 가는 것을 미루면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간다. 작가는 그런 로기완의 일기에 적힌 행로를 따르면서 그의 절망과 희망을 더듬어 본다.
"한국대사관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는 희망과 그곳에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절망... 로는 그 열흘 동안 희망을 키우는 법과 바닥까지 절망하는 법을 동시에 연습해야 했다. 희망은 하나여서 절박했고, 절망은 그후를 약속해주지 않아서 두려웠다." (89P)로 기록한 작가의 글은 주인공의 마음과도 겹쳐진다. 혹시나 자신의 잘못된 선택(방송을 미룬 것)이 윤주를 죽게 할까 두려움이 컸기에 오버랩은 여러 겹으로 나타난다. "로에게 대사관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윤주가 희망과 절망이 결합된 대상이었다.(94P)
주인공은 H잡지에 나온 로기완을 취재한 기사를 보고 회사를 그만두고 벨기에로 가서 로기완을 만나기로 하였다. 단 한 줄의 기사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그 기사 한 줄이 어떤 문장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나는 추측해 보다가 이 문장을 찾았다. 왜 살아야 하는가?의 명제에 대한 너무나 명료한 대답이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124P)
"내가 로의 인생을 알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은 나 또한 살아야 한다는 그 절대적인 명제를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싶어서였다는 것을(128P)......"
박윤철박사와 주인공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된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한 시간이 서로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 됩니다."(183P) 박윤철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건넨 말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박윤철이 아내에게 약과 와인을 넣은 컵을 건네고 방을 나와서 아내가 약을 먹고 죽은 모습을 마주해야 했던 장면을 연민의 마음으로 위로한다.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연민은 서로에게 치유가 된다. " 하늘로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날개가 절은 새는 오래도록 내 품안에 있었다."(187P)
이 소설은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로. 이것이 바로 내가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이다."로 끝나는 이야기다. <로기완을 만났다>가 제목이지만 결국 주인공은 서울이 아닌 벨기에 브뤼셀에 가서 로기완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결국은 서울에서 보지 못한 자신의 본 모습을 만났다
'낯선 이에게 도시는 반복되는 무시와 경멸 그리고 자신을 향한 과장된 경계심과 불필요한 오해로 가득 채워진다. ' 로기완이 겪은 도시의 모습이다. 또한 그녀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텍스트 외부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내부로 스며들어가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고통과 뒤섞인 진짜 연민이란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떠났고, 결국 사람의 따듯한 체온이 깃든 연민을 로기완과 박윤철을 통해 전해 받고, 또 전해 준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다면, 그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삶은 충분한 명제를 해결한 셈이 아닌가 하고 작가는 묻고 있는 듯 하다.
로기완이 북한이탈주민이어서 특별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난민이 얼마나 많은가? 한 사람의 이야기에 끌려 먼 나라로 떠나게 되는 동기는 과연 어떤 대목에서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가가 궁금해진다. 추운 겨울날 쉼이 필요한 시간에 읽으면 좋을 소설책이다. 나는 감기기운이 있는 토요일에 읽고 로기완이 아닌 주인공이 되어 보았다. 제삼자가 되어보는 것이 소설읽기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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