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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서평] 박혜윤 <숲 속의 자본주의자>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1. 2. 22:39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하고,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저자는 서울대학교 출신에 기자, 뉴욕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자 출신의 동반자와 두 아이와 함께 미국 시애틀에서 한시간 거리의 시골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책 표지를 보고 저런 집에 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표지는 '월든'을 지은 데이빗 소로우가 살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을 그린 그림이다.  저자는 숲속에 살아도 철저한 자본주의자다.  동네에서 가장 잘 팔리는 집을 사기 위해 2년동안 부동산 공부를 했다. 그래서 주인이 배짱으로 내놓으니 사기는 어려워도 팔려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팔 수 있는 집을 사서 살고 있다. 

 

 다만 월100만원 정도로 휴대폰은 2G폰 2대로 쓰고, 돈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몸으로 해결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도시의 삶과는 다르다. 그러나 '나는 자연인이다'의 삶은 아니다. 이메일로 글을 보내되 받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다. 그리고 통밀, 소금, 최소한의 이스트로 빵을 만들어 판다.  남편분은 동네의 수영장에서 일한다. 원고료를 받는다. 이 돈으로 생활을 유지한다.

 

 이 책에서는 '월든'의 일화가 등장한다.  어떤 마을사람이 부자 변호사를 찾아가 자기가 짠 바구니를 사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하자  나를 굶어 죽일 작정이냐고 화를 냈다. 소로는 그걸 보고 이렇게 말한다. "마을 사람은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살만한 가치가 있는 바구니라고 믿게 만들거나,  아니면 변호사가 사고 싶은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나의 권리라고 믿는 것도 나 자신이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만일 변호사가 바구니를 샀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하니까 샀을 뿐이다. 갑자기 선의가 생겼든 귀찮아서 그랬든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전혀 감사하거나 기뻐하지 않아도 된다. 이 세상이나 타인에게 기대하거나 원망하는 마음과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은 사실 똑같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P.89-90)

 

 이 세상에 대한 꿈과 이상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 역시 바구닐ㄹ 짠 마을사람 같은 생각이다.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하는 곳으로 판단하는 것도, 변화를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온전히 나만의 판단이다. 당신의 선택일 뿐이다. 세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세상에 무엇을 해줄 필요도, 감사하거나 보답할 이유도 없다. 그런 부담이 없을 때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비로소 공평해졌으니 말이다. (P.92)

 

 여기까지 읽으면 허무주의자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소로의 글로 방향을 잡아준다.  그리고 이 말은 저자의 삶의 방향을 잡아준 말이기도 하다. 

'나도 섬세한 바구니를 짰다. 그러나 내가 만든 바구니는 누구도 사고 싶어 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내게는 이 바구니를 짤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바구니를 사게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는 대신, 내 바구니를 팔지 않고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성공적이라고 여기는 삶은 여러 가지 삶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왜 각기 다른 온갖 삶의 방식들을 제쳐두고 하나의 삶의 방식만을 과대평가해야 하는가?'(P.93)

 

 저자는 가난에 대한 철학을 카뮈에게서 찾았다. <이방인>, <변신>,<카프카>의 작가로 유명한 카뮈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라고 했다. 카뮈는 성장기 에세이 <안과 겉>에서 "나는 바다와 함께 자랐다. 그 바다에서 가난은 풍성하고 찬란했다. 그런데 나는 바다를 잃었고, 그러자 온갖 호화로운 사치품들은 우중충해졌고, 가난은 참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참을 수 없는 가난이란 돈의 숫자로 인격적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냉혹한 현대의 모습을 표현한 말로 보인다. 절대 빈곤은 사라졌지만 상대적 빈곤은 우리를 매일 매순간 괴롭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수록 우울하고, 사치품은 우중충하다. 

 

  카뮈는 가난에 대해 "가난 안에는 고독이 있다. 그 고독은 모든 것의 진짜 가치를 되돌려준다."고 말하고, 에세이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가난을 참을 수 있는, 우리 삶에 필요한 고통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만의 무거운 짐을 반복해서 지게 되어 있다. 시시포스가 밀어 올린 돌의 원자 하나, 산을 이루는 미네랄 한 조각, 이 모든 것으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시시포스의 투쟁 자체가 한 인간의 심장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시시포스가 매일 반복해서 바위를 산으로 굴려 올려야 하듯이 내가 짊어진 짐이 내가 원한 바위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주체적인 의미 찾기를 통해 거대한 가치들로 통합되고 연결되어야 한다고 카뮈는 생각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도시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집과 일터만을 오가는 삶을 살다보니 세월은 몇 배로 빨라진 듯하다.  그 이유는 세월의 속도를 멈춰주는 추억의 페이지들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여행도 멈추고, 나들이도 멈추고, 만남도 멈추었다. 장례식도,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아도 부담감이 줄었다. 카톡으로 송금하면 계좌번호도 몰라도 된다.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실감하면서도 결국 코로나로 인해 한발 더 멀어졌다. 

 이런 처지에 한국에서 미국 시골 자연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글은 솔깃하다.  그리고 읽어갈수록 철학적인 깊이가 있고, 소로의 삶에 찬사를 보내던 류시화, 법정스님의 글에 이어 그런 삶을 실천하는 또 한 사람이 있어 반갑다. 저자의 실험적인 도전이 삶으로 뿌리내렸고, 평온한 일상으로 7년을 지냈다고 하니 앞으로 이 가족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순식간에 바뀌는 사회환경과 변화로 인해 디지털치매를 걱정해야 하는 한국에 사는 한 사람이 볼 때 저자의 삶이 또다른 삶의 모습으로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에게는 부러움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오래 읽었고, 천천히 읽었다. 서평쓰기도 한참을 미뤄두었다. 텃밭이 있고, 낡은 집을 구해 주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나에게 이 책은 그 마음을 더 부추기는 책이다. 

 

  자연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또는 도시의 삶에서 길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권한다. 길은 어디든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