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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본문
인생은 무엇을 보느냐 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작가 매트 헤이그는 영국 출신으로 20대에 절벽 끝에 서서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 자신의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깨달았다. 그 후 가족들의 도움으로 서서히 건강을 회복한 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영국의 마지막 가족>, 동화 <그림자 숲의 비밀>, 소설 <휴먼: 어느 외계인의 기록>, 에세이 <살아야 할 이유>등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시간을 멈추는 법>과 <크리스마스로 불리는 소년>은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결코 되고 싶은 사람이 다 될 수 없고, 원하는 삶을 모두 살아볼 수도 없다. 원하는 기술을 모두 배울 수도 없다. 그런데도 왜 그러길 바라는가? 난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경험의 모든 음영과 색조와 변주를 살아내고 느끼고 싶다. - 실비아 플라스-(*미국, 시인, 소설가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주인공 노라 시드는 어릴 적에 수영선수였으나 그만 두었다. 청년기에는 라비린스라는 밴드를 만들고, <fly the sky> 라는 곡을 작곡하고, 피아노를 잘 치는 소녀였으나 밴드도 그만두었다. 철학을 좋아했으나 석사과정을 그만두었다. 어릴 적에 빙하학자가 꿈이었으나 꿈을 접었다. 청혼을 받았으나 결혼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고향 마을 배드퍼드에서 악기 가게를 다니면서 전자 기타와 전자 피아노를 팔고, 리오라는 소년에게 매주 화요일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하나 있는 오빠는 사이가 연락이 잘 되지 않고, 악기 가게에서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듣고, 돌아온 날 고양이마저 죽었다. 고양이가 길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는 소식을 악기 가게 손님인 애쉬로부터 전해 듣고, 고양이 볼테르를 함께 묻어준다. 그 밤에 자살을 시도한다.
<삶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에 있다. 도서관 사서는 초등학교 시절 친절했던 엘름부인이다. 도서관은 시간이 멈춰있다. 00:00;00으로 멈춘 시간에서 엘름 부인으로부터 원하는 삶을 찾아 살 수 있는 수많은 책을 소개받고, 제일 먼저 찾은 책은 <후회의 책>이다.
수영선수를 그만 두지 않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삶, 밴드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브라질 상파울루 경기장에서 공연하는 삶, 청혼을 받아들여 댄과 함께 댄의 꿈인 펍을 운영하는 삶, 친구 이지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서 사는 삶, 빙하학자가 되어 노르웨이 북쪽에서 북극이 녹는 것을 관찰하다 백곰을 만나는 삶......하지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은 아님을 발견한다. 그런 꿈들은 아빠가 원하는 수영선수, 오빠가 원한 밴드 운영, 댄이 원한 결혼, 친구가 원한 오스트레일리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삶이 가능한 것은 평행이론의 가능성이다.
평행이론이란 평행우주와 같은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닮은 우주에 사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 나와 닮은 삶을 살고 있다, 주로 링컨과 케네디대통령의 삶을 평행이론의 예로 들기도 한다. 즉,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노라는 여러 삶을 살고 있다. 자정의 도서관에서 노라가 방문하는 노라의 또 다른 삶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렇게 이동이 가능한 사람을 <시간의 이동자들>이라고 부른다. 노라는 엘름 부인의 도서관에 기지를 두고 있다면 어떤 사람은 삼촌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다.
노라는 빙하학자가 되어 곰이 나타나는지 망을 보는 역할을 하던 중 곰의 습격을 받게 되자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양이를 묻어준 애쉬와의 결혼으로 딸 몰리, 개 플라톤과 살면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글을 스는 일을 하는 자신의 삶이 너무나 맘에 든다. 그러나 그 삶은 자신이 머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정의 도서관으로 돌아간다. 도서관은 무너져 내리고 노라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책은 도서관을 나오는 출구가 된다. 엘름 부인은 말한다. "너에게는 책이 있어. " 책을 통해 도서관을 빠져나오자 현실의 노라와 마주한다. "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가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선택한 노라에게 오빠가 찾아오고, 피아노 배우기를 그만둔다는 리오에게 다시 배우고 싶다는 연락이 온다. 옆집 배너지 씨는 집으로 돌아온 노라에게 "고맙다"라고 말한다.이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6개월 후에 돌아온다는 연락을 해 온다. 이제 노라의 삶은 새롭게 시작된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장치들이 있다.
'카라코람 산맥의 가장 높은 산은? K2', 이런 글의 내용과 동떨어진 작은 물음들은 독자의 호기심을 더하는 장치다.
'사람은 도시와 같아서 마음에 덜 드는 부분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전체를 거부할 순 없다. 위험해 보이는 골목길이나 교외 등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다른 장점이 그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도시와 사람을 비유하다니)'
'토마스 홉스는 기억과 상상을 거의 같다고 보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노라는 절대 자신의 기억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다. (기억과 상상이 거의 같다고? 생각의 범주가 같다면 가능한 일이다. 상상은 기억을 기반으로 펼쳐질 수밖에)
면이 스무 개인 다각형의 이름은? 아이코 사곤(이런 주의 환기 장치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하는 유식한 장난 같다)
물고기도 우울증에 걸린다. 제브라피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우울증에 걸린 물고기는 수조의 약간 아래족에만 머물렀다. 항우울제 프로작을 먹이자 선 위로, 아예 수조 맨 위까지 쌩쌩하게 돌아다녔다. 자극이 없으면 물고기는 우울증이 생긴다. (물고기도 우울증이 생긴다고? 구피 두 마리를 키우는 나는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다)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 말을 늘 명심해라."사서 엘름 부인의 말이다.
"꿈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고, 상상했던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면 일상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 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성공은 고독의 산물이다. 나는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소로가 <월든>에 쓴 글이다. 작가가 소로를 아주 좋아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옥스퍼드 대학 로빈 던비는 인간은 150명의 사람만 알고 지내도록 만들어졌다는 '던비의 수' 이론을 만들었다. 원시시대에 수렵인들이 평균 그 정도로 모여 살았기 때문이고, 중세 영국 공동체 평균 인원도 150명 정도였다. 켄트는 100이었다. 켄트 출신은 반사회적 DNA를 갖고 있다. 150명을 넘어서면 뇌는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면 소통을 갈망한다. -187P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194P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패의 배턴을 노라에게 넘겨주었고, 노라는 오랫동안 그걸 쥐고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렇게 많은 일을 포기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DNA에 넌 실패해야만 한다고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198P
삶의 의미만 찾다가는 제대로 살지 못한다. -까뮈-
그 순간 노라는 깨달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231P
세상의 좋은 것은 모두 거칠고 자유롭다. -233P
"체스에서 넌 폰이 가장 마법 같은 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폰은 하찮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폰은 절대 그냥 폰이 아니니까. 폰은 차기 퀸이야....... 가장 평범해 보이는 게 나중에는 널 승리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넌 계속 나아가야 해."-269p
인간관계에는 세 가지 침묵이 있다. 자신이 화가 났다는 걸 수종적으로 드러내는 침묵, '우린 더는 대화가 통하지 않아'라는 침묵,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침묵으로 그저 함께 있고, 함께 존재하는 침묵이다. 그런 침묵은 자기 자신과 기꺼이 침묵할 수 있는 것처럼 편안하다. -300p
우린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만 알아.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결국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일 뿐이야.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지."-313ㅔ
절망의 반대편에서 인생은 시작된다. -사르트르 -389p
이 책은 이벤트 선물로 받은 책이다. 가독성이 뛰어나다. 흥미진진하다. 평행우주에 평행이론이라니?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까?를 한번 생각해 본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를 즐기라고 수없이 들어왔기에 과거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기억이 상상과 거의 같기 때문에 거기서 상상을 멈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노라 시드가 겪은 일들을 읽고 나니 내 삶의 모든 것이 새롭다. 105동의 0이 원래 안이 비어 있었던가? 아니면 흰색으로 채워져 있었던가? 10월의 마지막 날을 향해 가는 가을 저녁의 나뭇잎들은 아름답기만 하다.
이 책을 코로나로 인해 삶의 갈피를 잃은 사람들, 부모 세대보다 못한 삶을 산다고 예고되는 젊은 세대들에게 권하고 싶다. 순간순간의 선택에 따라 우리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 수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말과 '무엇을 보느냐 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엘름 부인의 말이 오래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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