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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완전한 행복 본문
가스라이팅의 위험한 경고
정유정작가는 <7년의 밤>으로 유명한 작가다. 영화로 만들어진 <7년의 밤>은 원작 동명 소설보다 구성과 장면 전달 면에서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이후 개로 인한 전염병으로 파괴되는 도시를 그린 소설 <28>도 다른 작가가 보여주지 못한 놀라운 상상력과 새로운 소재가 돋보였다.
이번에 읽은 소설 <완전한 행복>은 2020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고유정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이혼을 요구한 남편을 죽이고 시체를 토막내서 유기하였다. 재혼한 남편의 아이가 잠들었을 때 아이를 살해하였다. 재판결과 전남편을 죽인 죄로 무기 징역, 재혼한 남편의 아이를 살해했다는 혐의에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인정받았다.
주인공 유나는 전남편 서준영을 살해하여 반달늪에 오리의 먹이로 주었다. 그 전에 대학시절 함께 동거한 강지운이 동기를 끝내고 짐을 가지러 온 날 커피에 수면제를 타서 먹였다. 그 결과 강지운은 올림픽대로에서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죽었다. 그 후 러시아로 떠난 유학 기간 동안 사귄 이슈트반도 죽었다. 아버지는 회사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을 질책하였다. 그 결과 딸이 준 수면제 든 커피를 마시고 졸음운전으로 죽었다. 재혼한 남편 은호의 아들 노아는 수면제 든 모과차를 마신 은호와 함께 잔 침대에서 다음날 질식사한 채 발견되었다. 은호는 수면제를 먹은 채로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구조된다.
유나의 주변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왜 유나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 소설이 고유정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새로운 용어 '가스라이팅'에 눈길이 간다.
가스라이팅(gas lighting)은 무엇일까?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가스등(Gas Light)>(1938)이란 연극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가스라이팅은 가정, 학교, 연인 등 주로 밀접하거나 친밀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
가스라이팅은 1938년 패트릭 해밀턴 작가가 연출한 스릴러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용어이다. 이 연극은 잭이라는 남성이 자기 아내(벨라)를 억압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잭이 보석을 훔치기 위해 윗집의 부인을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이 보석을 찾기 위해서는 가스등을 켜야 했는데, 이렇게 하면 가스를 나눠 쓰던 다른 집의 불이 어두워져서 들킬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잭은 집안의 물건을 숨기고 부인인 벨라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몰아간다. 잭이 보석을 찾기 위해 가스등을 켤 때마다 벨라가 있는 아래층은 어두워지고, 벨라가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잭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하는 것은 물론 정신병자로까지 몰아세운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네이버지식백과)
"엄마의 시험이야. 내일 아침까지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너를 용서해 줄게."
"용서받지 못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엄마와 함께 살 수 없어요."
"맞았어. 자 그럼 다시 물어볼게. 오늘밤, 방에서 나오지 않을 수 있겠니?"
'네."
딸 지유와 유나의 대화다. 모든 행동은 추적되고, 감시당하며 추궁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 점점 상대는 자신의 판단에 대한 자신이 없어지고, 점점 엄마인 유나에 의존하게 된다.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셈이다.
준영과 유나의 대화에서 행복에 대한 서로의 생각의 차를 말해주는 장면이 있다. (112) 내가 원하는 걸 상대도 원해야 결혼할 수 있다고 유나가 말한다.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는 소설의 진행과정에 모두 녹아들어 있다.
"그게 뭔데?"
"행복하게 사는 거."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 데? 한번 구체적으로 말해 봐."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준영의 말이다.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유나의 말이다.
이 책은 토요일을 쉬는 날로 정하고 읽은 책이다. 이야기의 힘은 대단하다. 몸살을 앓던 지난 1주일을 이야기로 녹여낼 수 있었다. 정유정 작가의 문체는 짧다. 강렬하다. 주저함이 없다. 그래서 빠져드는 힘이 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분석가이자 심리치료자인 로빈 스턴은 2008년 저서 《가스등 이펙트》를 통해 가스라이팅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왜곡과 진실을 구분하기 ▷상대방과의 대화가 소위 '밀당(밀고 당기기)'이라면 피하기 ▷옳고 그름 대신 '느낌'에 초점 맞추기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 또 전문가들은 스스로 가스라이팅 피해자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얼마든지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와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피해 자각과 거리두기가 이뤄진 다음에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전문가 등 제3자나 조력자를 찾아 그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타인에 의해 내 인생이 좌우되지 않도록 자존감을 회복하고 내 삶에 대한 뚜렷한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이 책을 단순한 고유정사건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대입해 보았다. 그리고 그 대상들이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그들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소설 속 유나의 딸 지유가 '요망한 생쥐'가 시키는 대로 할까? 말깔?를 고민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소설 속에서는 지유가 '요망한 생쥐'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이모를 구해낸다.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구하는 자물쇠를 푸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가스라이팅으로 괴로운 사람들이 읽었으면 싶다.
그들이 이 소설의 행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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