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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9. 22. 21:41

 

  집에서 마시는 물은 늘 끓여서 먹고 있다. 

요즘 정수기를 안 쓰는 집이 어디 있어? 라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물을 끓여서 먹고 있다. 

내용물도 달라지고 물을 끓여서 먹는 방법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슈퍼에서 파는 보리차를 사다가 끓여서 먹기도 했고, 시장에서 파는 둥글레를 사다가 끓이기도 했었다.

  몇년 전부터 옥수수 알맹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서 옥수수를 보내주실 때 딱딱해진 옥수수는 따로 모았다가, 혹은 옥수수 나무에서 말라버린 옥수수 알을 따내서 말려가지고는 아파트에 장이 서는 날에 튀밥기계에 튀겨서 물을 끓일 때 넣기도 한다. 

 그 외에도 올해는 작두콩이 알레르기 비염에 좋다고 하여 작두콩꼬투리를 사다가 납작납작하게 썰어서 채반에 널어 말렸다. 그리고 나서 기름없이 팬에 볶았다. 구수하고 깔끔한 맛이 생각보다 좋다. 

 또 마치 누에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초석잠을 말렸다가 볶아서 함께 끓이기도 한다. 

 

 물을 끓이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10년 전쯤에는 5리터가 넘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식힌 다음 물병에 담아서 냉장고 넣어두고 먹었다. 그러나 냉장고에 넣어 차가워진 물을 벌컥벌컥 먹을 일이 없고, 차가운 물보다 미지근한 물이 좋아지니 굳이 물을 끓여서 냉장고에 넣을 일도 없어졌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전기주전자에 끓이는 방법이다. 전기주전자가 대개 1.5리터나 2리터 정도 되니 물을 끓이면 하루 정도는 괜찮다. 그러니 옥수수 알갱이 반 줌에 작두콩 몇 개를 넣으면 금방 끓어서 좋고, 그대로 두고 먹다가 남은 찌꺼기는 버리면 되니까 편리하기도 하다. 요즘에는 투명한 용기에 끓이는 시간을 조절하는 전기 주전자도 나오니 편리하게 사용한다. 

 

 요즘은 어디에 가나 정수기가 다 있어서 편리하고, 특히 우리나라는 물 인심이 좋아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도 정수기와 물컵까지 비치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그러나 정수기의 물은 왠지 생물을 그냥 먹는 느낌이다. 늘 끓여 먹었던 버릇 탓일거다. 

 

  한동안 먹던 옥수수 알갱이가 다 떨어져서 연휴에 시간이 나니 옥수수알갱이를 가스렌지에 올리고 볶았다. 약한 불에 올려두고 가끔 가끔 저어주면서 창백한 노란색이었던 옥수수 알갱이가 점차 익어서 점점 갈색이 될 때까지 볶다보니 구수한 내음이 집안에 가득하다. 그릴에도 바닥에 얇게 펴서 앞 뒤를 바꿔가면서 구워주니 튀밥기계에 볶았을 때의 윤기 자르르 흐르는 결과물은 아니어도 구수함은 훨씬 더하다.  구운 옥수수가 통을 통에 가득 채우니 두어달은 구수한 옥수수차로 행복할 것 같다. 옥수수알을 떼고 난 옥수수대도 넣고 끓이면 좋다고 하여 두개씩 넣어 끓인다. 

 

  무색 무미 무취의 물이 최고라지만 나는 옥수수알, 초석잠, 작두콩을 넣어 끓인 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