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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모스크바 신사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6. 15. 21:28

32년간의 모스크바 메트로폴호텔 연금 생활기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한다!

 

  작가 에이모토울스는 미국 출신으로 스탠퍼드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았으나 금융투자전문가로 20년을 살았다. 그후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독특하게도 미국의 작가가 러시아 한복판 모스크바의 호텔에 연금된 신사 로스토프백작이 공산화된 세상을 적응하는 내용으로 소설을 집필하였다. 717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글 속에는 1922621(하지)부터 32년이 지난 1954621(하지)까지의 연금 상태에서의 에피소드로 이어져 있다.

   이 글은 계획적인 장치가 있다. 5권으로 구성하였으며, 1922(1), 1923, 1924, 1926(2), 1930, 1938, 1946(3), 1950, 1952, 1953(4), 1954(5)이다. 년도를 잘 보면 작가만의 장치가 있다. 1-1-2-4-8-8-4-2-1-1년의 순으로 건너뛰었다. 읽는 동안 왜 이렇게 건너뛰는지 궁금했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맥락을 이어간다.

 

공산당으로부터 부패계급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었으나 친구의 시 <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를 본인의 시로 발표한 덕에 호텔 연금형을 선고받은 로스코프 백작의 이야기다

그의 시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1922년 총살되었을 겁니다. (p.582)친구 미시카의 부인 카테리나와의 말

 

백작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를 보자.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백작은 평생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하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지 궁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p.52)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일한 결과에 도달한다. (몽테뉴의 수상록 p.56)

 

  작가는 로스토프 백작을 통해 인간의 판단이 얼마나 모순이 많은가를 지적한다. 과학을 근거로 하여 판단하는 합리적인 신사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의 예리한 기록들은 다양한 내용들로 나타난다.  이 부분은 심리학에 근거한 부분으로 해석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다.(p.195)-안나 우르바노바의 첫인상과 그녀를 겪고 나서의 다름을 이르는 말이다. 그녀와는 오랫동안 연인관계로 지내게 된다.

 

  역사학도로서, 그리고 현재를 충실히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상황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 것과 상황을 잘 감수해내는 것 간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338)-글래브니코프와의 대화(공산당 고위 간부)

 

그렇다. 늘 그래 왔듯이 인생은 굴러간다. (p.251)

맨체스터의 연회색가지나방은 100년 만에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진화하여 발견되었다. 이는 다윈의 수만 년 동안 진화해 왔다는 이론을 깨는 것으로 진화의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방이나 인간 모두 적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함을 알려준다. (p.529)

 

우리 인간은 결국에는 철학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이다. ... 책에 의해 형성된 신중한 고찰을 통해서든, 새벽 2시에 커피를 마시며 벌이는 열띤 토론을 통해서든, 또는 타고난 성향에 의해서든 우리는 모두 결국엔 근본적인 틀을 채택해야 한다. 즉, 중대한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온갖 조그마한 생동과 상호작용도 조리가 서도록 이끌어주는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어떤 인과관계의 체계-의도적인 것이든 자연 발생적인 것이든, 납득이 가는 것이든 뜻밖의 건이든 간에-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

 

  백작은 잡역부 아브람, 지배인 안드레이, 주방장 에밀, 수선사 마리나, 고위 관료 글레브니코프, 미국인 사업가 등과도 친구가 되고, 여배우 안나와는 연인이 된다. 심지어는 8살 여자아이 니나와도 친구가 되고, 니나의 딸 여섯 살 소피야의 아빠가 되어 호텔 안의 지인들과 소피야를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워낸다.

인내라는 것은 그토록 쉽게 시험당하기 때문에 우린 인내를 미덕으로 여기는 거야(인내의 미덕) p.228

 

   백작이 자정 무렵에 호텔의 지붕 위에서 잡역부로 일하는 아브람과의 대화는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사과꽃 핀 마을의 정경을 이야기 나눈 후에 커피에 대한 예찬을 기록한 부분은 커피에 대한 사색이 많은 사람에게서 나올만한 글이다.

  커피 한 잔 보다 더 많은 쓰임새가 있는 게 어디 있겠는가? 우아한 리모주 도자기 컵에 마시든 집에서 양철 컵으로 마시든 간에 커피는 새벽녘에 부지런한 사람의 기운을 북돋우고, 정오에는 생각에 잠긴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밤중에는 괴로운 사람의 정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커피 예찬 (p.204)

 

  백작은 어떤 사람인가? 백작이 니나의 딸 소피야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백작의 말이다. 소피야는 백작을 뛰어넘는 질문과 대답으로 백작을 곤궁에 빠뜨린다.  그동안 그가 그동안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는 사람들을 대할 때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벌써? 겨우 마흔여덟 살에?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너는 네 방식의 삶에 굳어져버린 것은 아닌가?(p.381

“젊은 시절의 백작은 주위 사람의 존재에 결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마음을 여는 친구가 되고자 노력했다. (p.381)

 

 그런 백작의 인생철학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연주회를 위해 파리로 떠나는 소피야에게 두 문장을 들려준다. 그가 32년, 아니 인생 65년을 산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로서. 품격있는 신사로서! 그리고 그에 더하여 불확실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도 말해 준다.  물론 듣는 사람이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듣는 이의 몫이다.

인간이 자신의 완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몽테뉴의 격언)

 

   우리 인생은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여 나아가는데, 그러한 불확실성은 우리의 인생행로에 지장을 주거나 나아가 위협적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한다면 우리에게 극히 명료한 순간이 찾아들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갑자기 하나의 필수 과정이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 꿈꿔 온 대담하고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p.687)

 

그리고 백작은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을 보면서 말한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한다.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다.

   그는 어쩌면 소동의 여파로 쓰러진 칵테일 잔을 똑바로 세움으로써 한 사람의 가장 사소한 행동으로도 세상의 질서를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실천해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p.713)-

 

 결말 부분에서 메트로폴 호텔을 탈출하는 백작의 기지와 소피야가 파리 공연을 마치고 남자로 변장하여 미국대사관에 도착하는 장면은 스파이영화의 한 장면, 영화 <쇼생크탈출>의 한 장면을 보는 듯이 통쾌하기까지 하다.  쇼생크탈출에서 앤디가 죄수들을 위해 들려준 음악 <피가로의 결혼> 음악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 책 <모스크바 신사>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2017년 여름휴가 독서 목록에 선정되면서 유명해진 책이다.  1920년대 귀족사회에서 공산주의로 대격변 시대를 맞이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총살을 면하고, 호텔 연금이라는 형벌을 받은 백작이 품격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32년을 살았던 메트로폴 호텔의 생활은 다채롭다.  러시아의 자랑거리가 보드카 밖에 뭐가 있느냐는 물음에 체홉과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 캐비아를 제시할 수 있는 러시아에 대한 지극한 호감을 가진 작가의 애정이 이런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700쪽이 넘는 장편이지만 여름휴가에, 주말에, 다소 삶에 지친 사람들이 책 속에서 위안을 얻을만한 책이다. 구석구석 신사로서의 다양한 교양과 문화, 지식과 지혜로운 통찰들이 작품을 풍성하게 한다. 품격 있는 삶을 원하시는 분들께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