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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은 체 하고 지내기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3. 29. 10:53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올라가다 보면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은 다른 사람을 마주친다.  휙 얼굴을 돌리고 다른 쪽을 바라봐도 되겠지만 함께 엘리베이터에 있는 그 짧은 몇 초가 너무나 어색하다.  함께 있는 사람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는다. 빨리 내려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하면 대부분은 반대쪽에서도 반응이 있다. 같이 인사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심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도 인사는 매번 하였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도 있다.  내가 짐을 들고 있을 때 몇 층에 가느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인사할 때는 대꾸도 안하다가 내가 내릴 때 잘 가라고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아파트에 10년은 넘게 살아도 여전히 낯선 이웃이 많다.

 

그러다가 아래층에 사는 아이를 만났다. 여섯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몇 층에 사세요?"

"응. 5층에 살아. 너는 몇 층에 사니?"

"저는 4층인데 우리 집 위층에 사네요. 와, 신기하다. "

'신기한 일인가?'

그 때부터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까지 아이의 말은 계속된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내리는 순간에도 "안녕히가세요.", "그래 잘 가라." 인사가 끝나도 아이는 엄마와 또다른 말을 한다.  귀염성 있는 아이다.  그 후로한 번 더 만났다. 알은체 하고 지내게 되었다. 인사는 알은 체 하고 지내는 거다. 

 

동시 <인사성 밝은 칠호>는 인사성 밝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 같은 동시다.  무서운 순간에 평소 인사성 밝은 107호 사는 애를 구한 경비아저씨의 재치를 그렸지만 그 뒤에는 인사성 밝은 아이가 복을 받는 내용인 듯도 하다.

 

인사성 밝은 칠호
집에 오는 길에 무서운 형들이 다가왔다.

틱틱 침 뱉으며 돈을 달라고 했다.

없다고 하니 주먹으로 때리려 했다 .

그때 등 뒤에서 칠호야! 부르며 자전거 타고 가던 경비 아저씨가 구해 줬다 .

집에 다 와 갈 때 내 이름은 칠호가 아니라고 했더니 만날 때마다 인사하는 인사성 밝은 107호, 칠호 집 애가 틀림없다고 했다.
-이장근(1971~ )

 

 

 인사는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칠호는 이름이 아니라고 해도 맞다 너는 인사성 밝은 107호 집 애, 칠호 맞다고 말하는 경비아저씨의 말 속에는 인사를 받아서 기분좋았던 순간의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