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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샨사 -바둑두는 여자-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3. 23. 10:01

바둑판을 사이에 둔 전쟁의 회오리 속 청춘 이중주

 

 

  '프랑스의 고등학생이 가장 읽고 싶은 소설에 주는 콩쿠르 데 리쎄앙 상 수상!', '파리의 태양', '북경의 별' 등 샨사에 대한 수식어가 책날개에 있는 지은이 소개의 2/3를 넘게 차지한다. 8세에 이미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9세에 첫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90년 프랑스 유학 시작 후 1997년 프랑스어로 첫 소설 <천안문>을 쓰고, 1999년 두번째 소설 <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을 발표하였으며, 세번째 소설로 <바둑두는 여자>를 2001년에 발표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에 1쇄를 시작하였고, 이번에 보게 된 책은 2013년에 9쇄로 나온 것이다.  원제목은  La Joueuse de go 다.

 이 책은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웬디, 그리고 신 만주국의 영혼이었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바친다고 서두에 밝힌다.

작가가 만주국에 인연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주는 우리나라와 국경이 맞닿은 지역으로 길림, 흑룡강, 연길, 등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들이 많이 이주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이 제국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조선에 이어 중국을 차지하기 위해 첫번째로 차지한 중국의 땅이기도 하다. 역사상 의미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네이버지식에서 발췌한 만주

  이 소설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1,2,3,4장 까지 읽고 나니 '주인공이 여자인가? 남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건 뭐지?'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본다.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다. 홀수 장은 여자 주인공인 16세의 이름도 알 수 없는 여중생의 성장 소설과 같은 이야기다. 짝수장은 전쟁에 나선 일본군 장교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만주, 베이징까지 일본군의 전쟁의 한복판의 이야기를 펼친다. 매우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홀수장에서 여중생의 6월의 싱그러운 초여름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와 짝수장의 전쟁터에서의 이야기가 빠르게 읽힌다.

 

 사무라이 집안의 장남으로 전쟁에 나간 주인공 남자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장교의 이야기에는 게이샤의 풍습도 약간 다루어지나 젊은 군인으로 앞날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가진 군인의 일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나중에 쳰휭에 부대가 머물게 되었을 때 정보를 얻기 위해 사복으로 갈아입고 광장에 나가서 바둑을 두게 된다. 유일하게 여중생인 야가를 만나서 여러 차례 바둑을 둔다. 바둑을 둘 때도 그의 이름은 '무명씨'다.  

 일본이 제국주의의 일념으로 한국과 중국을 점령하고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망을 갖고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몬다.

전쟁의 시작은 도쿄에서 일어난 대지진에서 시작한다. 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또한 전쟁을 정당화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일본은 물고기-고양이의 등 위에 떠 있는 섬이라 그 놈이 뒤척일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난 그 괴물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애썼다. 신을 죽일 수 없는 노릇이니 우리로선 대륙을 공격해야만 했다. 안정되고 광활한 중국이 손 닿는 곳에 펼쳐져 있었다. 우린 거기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다질 것이다.-74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어머니는 마치 전쟁을 홍보하는 정부의 대변인과 같은 말을 한다. 작가는 일본이 전쟁을 얼마나 정당화하는지 그 욕망이 얼마나 많은 희생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이기 위해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선 젊은 남자와 희망으로 가득 찬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만주국은 우리의 형제국이다. 불행하게도 테러리스트들이 우리 두 형제의 우정을 망쳐 놓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 위태로운 평화를 지키는 것이 네 의무다. 죽음과 비열함'죽음과 비열함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면 서슴지 말고 죽음을 택하거라.'-12

 

   쳰휭이라는 중국 만주 소도시에 살면서 중학생인 여주인공의 이름은 마지막 장면에서 야가((夜歌)라고 밝혀기 전에는 '나'이다.  '나'는 인력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며, 부유한 가정에 산다. 부모는 영국유학을 다녀와 영국시를 번역하고, 영국의 추억을 간직하고 살지만 전쟁이 나도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시간날 때 마다 쳰휭광장에 나간다. 광장에는 바둑판이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와도 대국을 펼칠 수 있다.  

 

 쳰휭광장은 상징적인 장소이다.  두 주인공이 만난 장소이기도 하고, 이름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시대 상황을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만남이 가능한 장소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잊기 위해 여기에 있다. 여기선 어느 누구도 저항군의 체포나 일본의 점령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외부 세계의 소식들은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196

-오로지 바둑만 둔다. 내가 자리를 뜨면 그는 내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시선으로 날 쫓는다. 그러면 내 불행들이 시적인 위해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명씨를 유일한 관객으로 둔 비극의 여주인공이 된다.

 

이 소설에서는 여성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이 문득 문득 드러난다. 등장하는 모든 여성은 불행하다.

영국 유학 후 영국의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일을 하는 아버지를 돕지만 단 한 줄도 어머니의 이름은 책에 실리지 않는다. 언니는 결혼을 했으나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괴로워 하다가 상상임신까지 하게 된다. 친구 홍은 생부와 계모의 구박에 어렸을 적부터 시달리고, 돈에 의해 팔려가기 직전에 스스로 부자의 첩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나', 야가는 그런 역사속의 여성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 바둑을 두고, 남자들과 당당히 겨루지만 결국 앞선 시대의 여성들과 별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된다.

 작가가 여성으로서 바라보는 여성들의 삶은 하나같이 힘들고 고달프다. 역사속에 바쳐진 제물이라고 표현한다.

무명씨로 나온 남자의 말을 빌려 표현한 작가의 말은 이 모든 생각들을 담고 있다.

 

나이와 출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가능한 사람의 깊은 슬픔이라는 공통된 운명을 겪고 있다. 여자들은 우리가 이 넓은 세상에 비친 제물이다. -267

 

야가의 주변 인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민과 징이라는 대학생이 있다.  이들은 국공연합군과 연결되어 일본의 괴뢰황제 정부와 일본군을 향한 테러활동을 펼치지만 일본군에 의해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밀고자의 괴로움에 사로 잡혀 괴로워 한다. 징의 아버지는 세상이 바뀌어 일본군의 세상이 되었어도 출세를 하여 시장이 되는 변화에 능수능란한 사람이다. 야가의 부모님은 영국 유학을 다녀왔다.  그들은 영국의 향수를 그리워하며 중국의 주인이 누가 되든, 어떤 변화를 겪든 관심이 없고 오직 서양 문화에 목을 매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작가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17세기 일본 시인 이싸의 한 줄 시로 표현한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는 지옥의 지붕 위를 걸으며 꽃들을 바라본다.'

 

 샨사의 <바둑두는 여자>는 작품의 표지로 보아서는 1980년대 잘 팔리지 않는 소설책, 중고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붉은 색이 넘실대고, 책의 띠도 빨간 색으로 강렬하다. 이 책을 지은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어하는 소설'이라고 추켜 세운다.  이런 면에서 이 책에 대한 해석이 중국을 국적으로 하는 프랑스어를 사용하여 여자가 지은 소설,  여중생의 성장소설 등으로 치우친 면이 없지 않아 안타깝다.

 

 작가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망령에 희생된 만주의 사람을 대변하기 위해 희망에 한 여중생을 주인공으로 , 또한 일본의 전쟁의 도구로 희생되어야 하는 젊은 청춘인 장교를 주인공으로 하여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이 자연스럽게 쳰휭광장에서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만나게 되지만 결국은 전쟁으로 인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을 것이다.  그 속에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의 삶까지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왜 바둑을 선택했는지 책의 첫 페이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 수 한 수는 영혼의 밑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발걸음이다. 나는 그 미로들 때문에 바둑을 사랑했다. 바둑은 기만의 게임이다. 오직 하나의 진실, 바로 죽으을 위해 온갖 허상으로 적을 포위해야 한다. '

 

 이 책은 주말에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책이었지만 내용은 결코 쉼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독성은 높으나 인생에 대한 많은 질문과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