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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아내의 일기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6. 3. 23:25

  

선물을 받았다. 아내의 일기라는 책!

  남편의 사모곡은 아내의 일기에서 시작되었다

  노년기에는 배우자를 잃은 깊은 상실감만으로도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영국에서 발표된 적이 있다.  특히 노년기에 배우자를 잃으면 호르몬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이 책을 쓴 김규원 씨는 글 쓰는 작가가 아니다.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약학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던 김규원 씨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부인이 남긴 일기장과 가계부, 육아일지, 요리일지,  병상일지 등 총 88권의 기록에서 비롯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외식을 하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기록하고, 음식의 반찬으로 나온 것을 모두 사진 찍은 듯이 적었다. 양복을 맞출 때는 어떤 색으로 하고 어깨는 치수는 얼마고 사이즈는 얼마인지를 적어 두었다. 육아일지에는 젖을 먹은 시간, 잠을 잔 시간을 기록했다.  결혼 후 37년간을 함께 살았다고 하니 1년에 2권 이상의 기록지가 생산된 셈이다. 남편과 아내로서 지내는 동안의 태교, 분만, 육아, 자녀교육 그 과정에서 발생한 류머티즘관절염은 김소주씨의 기록을 멈추지 못했다. 병상일지에도 어떤 약을 어떻게 먹었는지 다 기록되어 있다. 

 남편 김규원씨는 한국 혈관생물학 분야의 개척자로 위키백과에 소개되어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생화학과에서 공부했고, 부산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약학대학 교수로 지냈고 정년 퇴임한 상태다. 한국의 노벨상이라는 호암상을 수상했다.  그의 뒤에는 내조로 가정을 지킨 김소주씨가 있었다.  그들의 딸인 김선재 씨는 현재 시각디자인 교수라고 한다.  

 

   이 책은 김규원 교수님의 제자인 베로니카님이 독서모임 회원들에게 선물한 책이다. 책을 펴드는 순간 "아, 이런 내용이 책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김규원 씨의 눈으로 바라본 김소주 씨의 기록지들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있었다. "아, 이 때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 "이런 음식을 먹었었나?" , "이 때는 아내가 많이 섭섭했겠구나." 하는 생각들과 함께 37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의 기록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졌을 것을 생각해 보았다. 

  연필로 쓴 기록은 잘못된 기억보다 낫다.  30년 전 1990년에 발령을 받고 직장 생활을 했던 나도 잊었던 그 시절 짜장면 가격, 방 두 칸 짜리 전세방 가격 등은 나의 지난 세월을 기억나게도 한다. 한 사람의 기록이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의미 있게 기억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의 기획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전쟁 중의 상황을 간결하게 기록한 책으로 유명하다. 기록이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우리의 삶을 기억하게 한다고 볼 때 언어는 우리를 잇는 실이 된다.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쓴 책,  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한 사람의 노력으로 기록된 역사를 남편이 읽고 책으로 썼다.  수고한 아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남은 남편과 딸이 잘 살겠다는 약속으로 읽힌다.  이 즈음에 결혼을 한 두 사람이 있다. 신혼여행을 갔는데 다녀와서 나에게 인사하러 온다면 이 책 <아내의 일기>를 선물로 줄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두 부부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