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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좀머 씨 이야기 본문
여러 겹 삶의 그림자를 발견한 소년의 성장기
이 책 <좀머 씨 이야기>는 주인공이 ‘좀머(sommer, 독일어, 여름이라는 뜻)씨가 아니다. 좀머 씨의 정식 이름은 막시밀리아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다. 이야기의 내용이 좀머 씨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 <나>의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 바람을 타고 훨훨 날 수 있었을 것‘ 같은 초등학교 1학년 때에서 시작하여 ’ 학생증‘을 받는 나이인 16세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다. 다만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 좀머 씨라는 특별한 인물이 있었고, 그 사람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성장소설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 저자 파트리트 쥐스킨트는 1949년 독일 태생으로 뮌헨대학과 엑 상 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시나리오와 단편을 썼다. 시나리오 <콘트라베이스>, 소설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향수)>가 대표작이다. 특히 <향수>는 지상 최고의 향수를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성공한 작가임에도 모든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고, 외부에 노출되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좀머 씨 이야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 전쟁 직후 사람들이 전부 배낭을 메고 다니던 시기, 휘발유도 자동차도 땔감도 먹을 것도 부족했던 시기, 감자 1킬로그램 구하러 몇 시간이든 걸어갔다 오던 시기(p.26)였다. 작가의 관심 분야는 화가 르누아르가 추구했던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의 장면이 아니라 삶의 이면에 보이는 그림자 같은 삶의 모습이다. 심지어 좀머 씨가 없어진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2주일이 걸릴(p.117)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잊힌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작가가 쥐스킨트이다.
<좀머 씨 이야기>는 두 갈래의 이야기인 셈이다. 한 갈래는 성장기 소년 <나>의 일상이다. 나무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같은 반 여자 아이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실망한 이야기, 악기 연주 실력은 뛰어나지만 성격은 그 만큼 우아하고 아름답지 못한 피아노 선생님 미스 풍켈, 경마를 좋아하지만 TV는 사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남의 집에 TV를 보러 다녔던 이야기 등이다. 특히 이 책은 글 사이사이에 부드럽게 뭉개서 그린 그림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연둣빛 들판, 자연 속의 한 점이 된 소년과 등장인물들, 악의 없이 천진난만한 소년의 성장기를 보고 있으면 청량감과 신선함이 가득한 책이기도 하다. 반면, 좀머 씨에 대한 내용은 결이 무척 다르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 근방을 걸어 다녔다. (P.18) 겨울이면 검은색에 폭이 지나치게 넓고 길며 이상하게 뻣뻣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너무 큰 무슨 껍질처럼 그의 몸을 감싸던 외투를 입고 다녔다. 신발은 고무장화, 대머리 위로는 빨간색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여름에는 까만색 천으로 띠를 두른 납작한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고, 캐러멜색 린네르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길쭉하고 약간 구부러진 호두나무 가지로 제3의 다리 역할을 하는 지팡이, 버터 바른 빵과 약간의 물, 모자달린 우비가 전부인 배낭이 좀머 씨가 가진 전부였다. 좀머씨는 '밀폐 공포증' 환자(p.44)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비 오는 날 주인공이 만난 좀머 씨의 얼굴은 공포에 질린, 갈증을 느끼는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인물이었다.(p.45) 좀머 씨가 문장으로 또렷하게 한 말은 한 문장이었다. 비와 우박이 내리는 날 자동차를 태워주겠다는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한 말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좀 제발, 제발 그냥......!"이 전부였다. (p.45) 어느 날, 피아노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주인공은 호수로 걸어 들어가는 좀머 씨를 발견하지만 좀머 씨를 부르지도 않았고, 좀머 씨가 죽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좀머 씨의 간청하는 듯한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p.120)
<좀머 씨 이야기>는 동화책이고, 아름다운 그림이 꽤 여러 장에 그려져 있는데다 좀머 씨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면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연상하게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마을에는 이름이 진수인 거지가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있었으며, 머리카락도 길고 엉켜있었다. 두꺼운 옷을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볼라치면 어른들은 "너, 울면 진수 거라지 온다. "하며 겁을 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쥐스킨트의 동화처럼 자세히 말할 수 없다. 그저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이지 그가 내 삶에서 멀었기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쥐스킨트의 동화는 그런 면에서 나의 오래전 유년 시절을 잠시 떠올리게 하면서도 좀머 씨에 대한 궁금증을 지속시킨다. 핵폭탄까지 대두했던 세계 제2차 대전의 중심이었던 독일에서 좀머 씨와 같은 인물들은 많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쟁의 끔찍한 현실을 목도하였거나 가족을 잃었거나 전쟁터에서 병사로 참여하였다든가 하는 사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상처를 안고 있다면 사람들과 나눌 수 없는 고통이었을 터이다. 편히 앉아서 빵을 먹지도, 잠시 누워 쉬지도 못하고 그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걸어야 하는 운명의 사나이 좀머 씨. 그는 끝내 호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운명을 완성하였다. 이 책이 쉬운 글임에도 여운을 크게 주는 이유는 좀머 씨와 같이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이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통해 전해진, 아침부터 저녁까지 쏘다녀야 하는 운명을 가진 좀머 씨의 인생은 삶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에 대한 고찰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생을 마주하고 맞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삶에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하고 괴로워하는 인물 좀머 씨에 대한 대조적인 모습에서 느끼는 점은 이거다. 두 발로 딛고 서서 자신의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본다. 질문이 중요시 되는 요즘이다. 이 책은 질문이 생기는 책이다. 오래 생각해야 대답할 말을 찾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