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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그림자 노동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7. 9. 00:19

  이반 일리치(1926~2002, 오스트리아-미국-멕시코-독일)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라고 뉴욕 타임스가 언급하였다.  그의 이력은 특별하다.  로마에서 신학과 철학 공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사제로 일하다가 교회에 대한 잦은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1980년대 독일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활동에 전념했다. <자각의 축제>, <학교 없는 사회>, <누가 나를 쓸모없게 한느가><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등의 책을 썼다.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책을 써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사회, 경제, 역사, 철학, 언어, 여성문제 등 다각적인 분야에 깊은 통찰을 남겼다. 

  하루 24시간 중에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은 8시간이다. 그런데 9시에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 아침 7시에 일어나 몸을 씻고 아침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회사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회사 일을 위해 아침에 쓴 시간은 꼬박 2시간이다. 퇴근 이후는 교통 체증으로 차가 밀려서 집에 도착하면 8시 30분이 넘는다. 또는 업무를 마치느라 늦어지면 오후 9시를 넘기기도 한다.  이렇게 회사 근무 8시간을 제외하고 회사에 가서 일을 하기 위해, 혹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행하는 보이지 않고 임금화 되지 못하는 행위와 시간들이 '그림자 노동'이라고 일리치는 말한다. 성장사회가 대가 없는 노동을 하는 여성과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노예화한다고 말한다. 

 

 '왜 갈수록 편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더 피곤할까?' 그림자 노동은 무엇일까?

  카페에 가서 키오스크에 주문서를 작성하고,  카운터에서 호출을 하면 음료를 가져가고, 다 마신 음료는 카운터에 가져다 주는 행동을 보자.  불과 2-3년 전만 해도 자리에 앉아 있으면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았고, 손님은 음료수만 마시고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서서 나오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주문도, 음료를 가져가고 반납하는 것까지 손님 몫이 되었다.  이반일리치는 '산업사회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보완물로 요구하는 무급 노동(가사노동, 장보기, 학생의 벼락치기 공부, 직장 통근, 소비로 인한 스트레스, 의사의 지시 따르기, 강요된 일을 하기 위한 준비등)이 '그림자 노동'이라고 말한다.(176p) 

 그림자노동의 조건은 자급자족 활동이 아니라 임금 노동의 전제 조건이다. 임금 노동은 그 일에 지원하거나 자격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림자 노동은 나면서부터 정해지거나 부여되는 것이다. 

 

근대 경제학과 이반일리치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

근대 경제학은 인간은 날 때부터 '필요'를 가진 존재이고, 자연의 희소성을 두고 서로 싸워야 하는 존재(호모 이코노미쿠스)로 보는 관점을 가지는 반면 일리치는 인간의 필요란 조작된 것이요, 우리 삶의 조건은 희소한 것이 아니라 자급자족적 삶을 꾸려가기에 충분한 것이다. 우리의 가난이란 현대화된 가난으로서 상품을 소비할 수 없어서 생겨난 것이고, 그런 점에서 상품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해 근본적인 독점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상품의 끝없는 생산 및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역생산성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집안 일을 하면서 벌지 않고 소비만 하는 것이 과연 특권인지 묻는다. 학생들은 학교 다니는 것이 배우기 위해서인지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인지 묻는다. 소비의 고단함이 소비가 약속했던 구원에 갈수록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57p)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찾아 헤매던 현자의 돌을 우리가 발견했다. 그것은 노동이다. 임금 노동은 가난뱅이를 부유하게 하는 자연적 원천이다. '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12년 전(1777년) '만연한 구걸을 없애되 왕과 빈민에게 두루 이롭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쓴 논문 당선작의 첫 구절이다.  그렇지만 18세기 이후 노동의 가치, 긍지, 즐거움을 운운하는 자들이 말하는 노동은 늘 남의 노동이었다. (185p)

 

책의 구성은 어떠한가?

머리말부터 200여 쪽으로 이루어졌고,  1장 사회를 결정하는 세 가지 차원, 2장 토박이 가치, 3장 자급자족을 상대로 한 전쟁 , 4장 민중에 의한 연구, 5장 그림자 노동으로 구성하였다. 208쪽부터 238쪽까지는 해설과 참고문헌을 실었다.  일리치가 훗날 교수로 활동하면서 에세이, 논문을 작성하여 발표한 내용을 책에 실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설명하고 있는데 나의 이해도는 50%를 넘지 않는다.  2장 토박이 가치에서는 토박이 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향해 신대륙(인도)을 찾아 나선 후 이사벨여왕에게 카스타냐 어를 만들어 바친 네브라하의 청원은 인쇄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책 읽는 것을 두려워하여 표준어를 만들어 교육하고 교육받은 사람만 읽도록 통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실제로 이루어졌고 이후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학교에서만 배우게 제도화되었다는 내용이다.  

 

보완할 점은? 읽는 대상을 학자들로 생각한 논문 형식을 선택해서 그런지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정확히 어떤 내용을 설명하는 것인지 학자의 언어로 기술되어 있어서 현저하게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신학, 철학, 역사학을 공부한 일리치가 통찰력을 발휘하여 도래하는 자본주의의 큰 장벽을 예견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그림자 노동과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즉 자급자족의 바아향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유일무이하다. 일리치의 책을 보완하고자 2015년 크레이그 램버트가 <그림자노동의 역습>을 발행하였다.  대가없이 우리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었다고 한다. 램버트는 "고용주는 인건비를 줄이고 소비자는 '선택권'을 가지는 동안 "유일하게 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이고 '무한한 선택권은 사람들을 멀티태스킹의 덫에 꾀어 들이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삶이 여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 탓이 아니다. 어쩌면 일을 많이 할수록 그림자노동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그림자 노동의 대안은 무엇일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원격근무가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하도록 출근과 이동을 줄이는 일이다.  가사 노동을 가치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유치원, 학교에 보내고 난 후에 부모가 직장에 출근하면서 가정교육은 본질이 흐려졌다.  이 문제는 사회문제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가사노동을 임금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가사노동지원금을 지급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코로나 때 생활지원금 성격으로 지원되었을 때의 방법이다.  실질적으로 지원금이 지급됨에 따라 소비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무 앞서가면 뒤따르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  학자라서 그럴 수 있다.  그 틈을 램버트가 메워주었다.  램버트의 예시와 설명은 철학, 신학, 언어,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이해도를 높여주고 이반 일리치를 좀 더 친근하게 접할 용기를 제공하는 단서를 주었다.  앞선 사람이 뒤에 선 사람에게 길을 보여주는 셈이다. 다소 어렵고 난해하지만 몰아치는 성장주의와 자본주의의 홍수 속에서 유일하게 일리치가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주고 있어서 거대한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본 심정이다.  외롭게, 그러나 담대하고 용기 있게 외치는 일리치의 목소리가 들린다.  "성장주의가 우리에게 정말 옳은가? 다른 길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