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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꽃> 본문
꽃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 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꽃의 향기를 흠향하러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 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중에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이즈음 시골에 가면 담 밑에 접시꽃과 달리아, 설악초, 백일홍 등으로 주인이 좋아하는 꽃을 심은 골목을 지날 때가 있다. '아, 이 집주인은 백일홍을 좋아하는구나. ' 하고 걸어가다 보면 봉숭아를 몇 그루 시어놓은 주인의 꽃밭과 만난다. '아, 이 집주인은 봉숭아를 좋아하네.'하고 혼잣말을 하고 지나간다.
얼마 전에 꽃에는 관심도 없던 지인이 설악초를 보고 나무인 줄 알았다면서 내년에는 저 꽃을 심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봄에 심을 때는 작고 여려 보여도 여름을 지나면서 설악초는 본 모습을 드러낸다. 하얗게 피어 벌어지면서 나무의 수형처럼 사방으로 가지를 펼친다. 잎조차 하얗게 변하여서 온통 하얗게 꽃이 핀 것처럼 보인다. 설악초는 그래서 멀리서 보아서는 어느 부분이 꽃인지 알 수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꽃이 작아 앙증맞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온몸을 하얗게 변화시키는 설악초는 경계가 허물어진 듯하면서도 가을에 흔히 볼 수 없는 흰색으로 주변과는 경계를 분명하게 만들어 내는 꽃이다. 아마 그래서 지인의 눈에 띄었나 보다. 다른 식물들은 잎은 그대로이고 꽃만 화려하게 피는데 반해 설악초는 온몸을 물들이니 다를 수밖에.
울타리로 담을 쌓아 만든 경계보다 꽃으로 만든 경계는 긴장한 마음을 허무는 평화를 선물한다. X세대, Y세대, Z세대, MZ세대...... 이렇게 나누는 경계에 익숙한 나에게 함민복 시인이 발견한 담장 위의 화분에 담긴 국화는 너와 나의 경계의 사이를 잇는 악수를 청하는 손길로 다가온다.
함민복 시인은 울타리에서 국화를 찾았고, 나는 울타리에서 설악초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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