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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야마구치 슈<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5. 5. 18:02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문명인의 길잡이 철학책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

 

이 말은 일본 야스펜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옮겨온 말이라고 밝힌 프롤로그에서 ‘철학을 배우면 어떤 일에 도움이 된다거나 멋있어 보인다거나 현명해진다는 것이 아니고,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으면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 한마디로 ‘위험한 존재’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철학의 중요성을 역설한 로버트 허친스 교수의 말을 빌어 리더가 철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와 철학을 배우면 얻는 이점에 대해서도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혁신을 위한 어젠다를 정한다,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의 네 가지로 설명한다.

 

   저자는 <그들은 어떻게 지적 성과를 내는가>,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 <읽는 대로 일이 된다> 등의 책을 집필한 저자이기도 하며, 세계 1위 경영·인사 컨설팅 기업인 콘페리에이그룹의 시니어파트너로 일하면서 ‘지적 생산 기술’과 ‘지적 전략’을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미학미술사를 수료한 저자가 경영학 관련 컨설팅을 하는 것은 “철학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 지 저자 스스로 철학을 앎으로써 현실에서 활용해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변화를 주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철학 입문서들이 그리스의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중세에 이르다가 데카르트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철학서 읽기를 어렵게 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만드는 데서 착안하여 목차를 시간 축으로 구성하지 않았다. 사람, 조직, 사회, 사고라는 콘셉트를 정하고, 50개의 철학을 주제별로 선정하였다.

 

   또한 현실의 쓸모에 기초하여 저자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그 유명한 칸트, 스피노자 등의 철학은 목차에서 배제하였으며 철학 이외의 경제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언어학 등의 내용을 추가하여 이 책을 엮었다.

크게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의 WHAT에 대한 물음과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의 HOW에 대한 물음으로 정리된다고 하면 철학자들이 과거로부터 물었던 물음은 ’제안→비판→재제안‘의 흐름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p.11)

 

   WHAT의 물음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물, 불, 흙, 공기의 네 가지 원소로 모든 사물이 이루어졌다‘는 주장들이 근현대의 과학에 따라 오류로 밝혀지기도 하지만 그 당시 철학자들의 배움의 과정이야말로 오늘날 철학의 발전을 가져온 출발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HOW의 물음은 미국 육군이 현재의 세계정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인 VUCA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인간의 과제이기도 하다. VUCA는 변동성(Volan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이니셜로 조합한 말로 ’올바른 판단이 어려운 시대‘임을 말한다. 인류 역사상 살기 좋은 시대가 있었을까? 늘 불안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이 아니었을까?

 

   이 책에 소개된 50개의 개념과 이론은 모두 삶과 연관이 있다. 특히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해 주는 대목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몇 가지를 살펴본다.

 

   이솝우화에서 ’여우와 신포도‘를 보자. 여우는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따지 못하자 “이 포도는 엄청나게 신게 분명해. 이런 덜 누가 먹겠어!”라고 가 버린다는 이야기다. 이때 여우가 보여준 것은 포도를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을 포도가 엄청 시다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해소하는데 바로 이 점에서 니체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말한다. 즉,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이 뒤섞인 감정과 행동까지를 일컫는 말인데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나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보복 소비를 하거나 유명 브랜드에서 고가의 시계나 자동차, 명품 가방을 한정 판매하는 전략들은 결국 사람의 이런 심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꾸려고 한다는 니체의 지적은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설파한 [성서]와 노동자가 자본가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한 {공산당선언}이 같은 맥락에 있어서 전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이 필요에 의해서만 소비하지 않는다는 장 보드리야드<소비의 사회>의 ’차이적 소비‘는 오늘날을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소비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말한다. 그는 소비가 ’나는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차이를 표현하는 기호라고 말한다. 고전적으로는 소비의 목적이 기능적 편익, 정서적 편익, 자아실현적 편익을 위해서였다면 이제는 타인과의 관계성 즉, ‘사회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기호성을 갖지 않거나 갖더라도 희박한 상품과 서비스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다. ‘아이폰’ 쓰는 사람이 왠지 얼리어답터이거나 기기를 잘 다루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 전기차 충전소가 부족해도 테슬라 자동차를 사고, 카페가 많아도 유독 스타벅스에 많이 사람이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부터 “하면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데 요즘 듣기 힘든 말이 되었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선행을 쌓느냐 못 쌓느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라는 장 칼뱅의 예정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막스 베버는 구원받을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말하며 칼뱅파의 예정설이 자본주의를 발달시켰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동기라는 것이 노력하면 대가를 얻는다는 단순한 인과관계로 유발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학습심리학에서 밝혀진 바 있다. 기업의 인사제도를 보면 노력→결과→평가→대가를 전제로 하고 있으나 늘 불협화음을 내고 있고, 오히려 승진이나 출세는 정해진 사람이 한다는 생각들이 늘 존재하고 있다. 이는 인과응보를 부정하는 예정설이 자본주의의 폭발적인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다.

 

   여기에 같은 맥락으로 멜빈 러너의 ‘공정한 세상 가설’을 연결해 보자. 1만 시간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노력 원리주의’는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다룬 내용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 최고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훈련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프린스턴대학교 맥나마라 조교수팀은 ’연습량이 많고 적음에 따른 성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정도‘로 컴퓨터게임 26%, 악기 21%, 스포츠 18%, 교육 4%, 지적 전문직 1%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니 노력하면 보상받는 공정한 세상이라는 가설에 사로잡히면 도리어 조직을 원망할 수 있으며 이는 테러를 일으키는 심리 과정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한 회사에서 조기퇴직을 당한 사람들이 “밤잠 안 자고, 가족도 팽개치고, 회사를 위해 일했는데 배신을 당했다”라고 말했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회사는 그런 충성을 요구한 적이 없다. 다만 개인이 지나치게 충성했을 뿐이었다. 남모르는 노력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사고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말은 지나치게 ’착함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저자가 네 가지 콘셉트로 나눈 것을 보면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사람), 왜 이 조직은 바뀌지 않을까?(조직),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사회),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사고)로 구성된다.

책읽기를 마감하려는 즈음에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자크 데리다는 탈구축을 말한다. 즉, 이항대립(二項代立)=이분법을 넘어서라고 말한다. 서양 철학은 선과악, 주관과 객관, 신과 악마 등 이분법으로 대립했으나 과거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틀을 구축하는 것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A를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그 의견을 꺾기 위해 B라고 주장한다고 할 때 가장 강력한 방법은 ’A냐 B냐 하는 문제 설정 자체가 이상하다‘라고 지적하고 상대가 들고나온 논의의 개요나 질문의 전제를 처음부터 무너뜨리는 것이다. 어쩌면 게오르그 헤겔의 변증법에서 발전한 모습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립하는 사고를 서로 부딪쳐 투쟁시킴으로써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법인 변증법은 A가 제시되면(테제) A와 모순되는 가명제 B가 제시(안티테제)되고 A와 B의 모순을 해결하는 통합 명제 C(진테제)가 제시된다. 역사의 흐름은 결국 진화 발전과 복고 부활이 동시에 일어나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뜻이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시니피앙(signifiant,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과 시니피에(signifie,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언어)에 대한 정의의 소개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언어 시스템에 의해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간이 언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고해야 하지만, 그 언어가 의지하고 있는 틀(구조)에 사고를 의지하게 되고 결국 인간이 의지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는다는 구조주의 철학과 맞닿는다. 즉,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구조에 따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래 예측에 대해서는 늘 궁금하다. 2021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우주 여행자를 예약받고 있는 세상이지만 한편으로 돌아보면 점집과 사주팔자와 타로 등으로 두려운 미래를 예측해 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갈하는 목소리가 있다. 미국의 개인용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린다는 앨런 케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지금 존재하는 세계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행한 의사결정이 축적되어 지금 이 세계의 풍경이 그려진 것이다. 그러니 미래 세계의 경치도 지금, 이 순간부터 미래까지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니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라는 물음보다 “미래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를 자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50개의 철학을 읽으면서 한국과 정서가 비슷한 동양인으로서의 일본학자가 쓴 책이라 조금은 이해도가 높았다 생각된다. 특히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문화가 일본과 한국이 비슷하므로 심리적인 부분에서 서양인에 비해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철학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초반에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기획이 탁월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또, 나의 사고가 한 개인의 사고가 아닌 언어와 문화, 같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암묵적인 약속 등을 반영하여 내린 결론임을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주변 사람들과의 동질 의식과 함께 자유로움도 느낀다.

 

   이 책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직장인, 자영업을 하는 분들에게도 필독서로 권하고 싶다. 철학을 알고 사회를 바라보는 것과 그저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철학을 배움으로써 어떤 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거나 멋있어 보이지는 않아도 우리가 이어가야 할 인류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