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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1. 4. 16. 17:12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詩 전문>

 

 오늘 새벽 정호승 시인의 1998년 3쇄로 발행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시집을 책꽂이에서 찾아 들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평소 즐겨보고, 음미하는 독자로서 작가의 시를 왜곡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리고 그 왜곡의 원인을 찾고, 다시 정호승시인의 시를 읽고 싶어서다.

 늘 가는 카페에서 그의 시 <상처가 스승이다>를 보고 이런 시가 있었나 싶어 옮겨 적었다. 신고를 당했다. 그럴 리가...... 다시 천천히 그의 시 <상처는 스승이다>를 찾아보았다.  깜짝 놀랐다. 제목이 <상처가 스승이다>가 아니라 <상처는 스승이다>이고, 그 내용이 전혀 달랐다. 이럴 수가.... 작품에 대한 모독이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의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처가 스승이다>라는 시에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들어있었으니 그 구절을 의심해 보지 못한 것이다.

 

상처는 스승이다

 

상처는 스승이다
절벽 위에 뿌리를 내려라
뿌리 있는 쪽으로 나무는 잎을 떨군다
잎은 썩어 뿌리의 끝에 닿는다
나의 뿌리는 나의 절벽이어니
보라
내가 뿌리를 내린 절벽 위에
노란 애기똥풀이 서로 마주 앉아 웃으며
똥을 누고 있다
나도 그 옆에 가 똥을 누며 웃음을 나눈다
너의 뿌리가 되기 위하여
예수의 못자국은 보이지 않으나
오늘도 상처에서 흐른 피가
뿌리를 적신다       

                         <시 전문>

 

인터넷에 떠도는 시<상처가 스승이다>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나를 쓰러뜨린다...... 로 시작하는 이 글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왜곡한 것이었다.  그 근원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다시 책장을 보고 그 해답을 찾았다. 정호승시인의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라는 책에 수록된 글의 순서였다. 글의 소제목들을 모아도 시가 되는 시인의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 다만 왜곡하여 시를 옮기는 것은 시인을 아끼는 독자가 볼 때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여 다시 읽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집은 순수한 소년의 감수성으로 저녁, 고래, 소나무, 꽃, 풍경, 눈, 전화, 수선화, 절벽, 바닷가, 나무, 결혼, 반지, 우박, 달팽이, 나비, 잠자리, 개미, 벌레, 나뭇잎, 종소리, 비, 민들레,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일찍이 마음속에 충만한 파도가 출렁이는 詩心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들을 시인의 감성어린 시선으로 다시 처리하여 오롯이 한 사람 독자에게 적어 보내는 한 편, 한 편의 편지처럼 읽힌다.

 제목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수선화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시 중에서 자연이 된다. 가슴검은도요새, 새, 산 그림자, 종소리, 하느님도 외롭다 그러니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결론을 끌어낸다.  그런데 제목이 <수선화에게>이다. 시의 어디에도 수선화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수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수선화(水仙花)는 물의 신선이라는 뜻이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수선화의 꽃말을 아는가? 자기 사랑 , 자기애 등으로 꽃말이 전해진다. 그렇다. <수선화에게>는 즉 시인 자신에게 보내는 독백인 것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가수 양희은의 노래로도 만들어져 불린다. 그 울림이 잊히지 않는 노래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시인 정호승의 시선이 외로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자연을 거쳐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발견한다.  시 <풍경 달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돌아오는 길에/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풍경을 달고 돌아왔다/먼데서 바람 불어와/풍경 소리 들리면/보고 싶은 내 마음이/찾아간 줄 알아라(시 전문) 보듯이 푸고 돌아와 풍경 소리 들리면 내 마음인 줄 알아라 라고 전하는 희망이 섞인 따뜻한 시선을 발견한다. 시 <달팽이>는 또 어떤가? '비가 온다/봄비다/한참 길을 걷는다/뒤에서 누가/말없이/우산을 받쳐준다/문득 뒤돌아 보니/달팽이다(시 전문)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사람인 줄 알았건만 말없이 우산을 씌워준 이가 있으니 달팽이라. 시인의 시선이 슬프지 않고 따뜻하다. 체온이 느껴진다.

 

 시집<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봄비 오시는 날, 새벽에 깨어 잠이 오지 않을 때, 화창한 날에 달팽이를 만났을 때,  바람 부는 저녁 등 소파 혹은 식탁 옆에 두고 읽어도 좋을 책이다. 더불어 양희은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도 찾아들어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