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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8. 23. 본문

2020년 글쓰기-물.흙.불.바람/2024 글쓰기

2024. 8. 23.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4. 8. 23. 22:53

  백두대간수목원(경북 봉화군)에 다녀왔다.  동양 최대의 규모,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목원이라 한다.  가장 큰 수목원은 남아케리카의 국립한탐식물원이다.  수목원, 식물원, 정원은 어떻게 다를까?

*수목원: 수목의 보전과 연구를 하는 곳

*식물원: 식물을 수집하는 곳(주로 개인이 운영)

*정원: 식물을 예쁘게 가꿔서 사람들이 즐기도록 만든 곳 

수목원> 식물원> 정원 순으로 범주가 커진다.  

 

  백두산 호랑이 여섯 마리를 사육하고 있어서 호랑이가 있는 수목원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국립세종수목원과 같이 국가에서 관리, 운영하는 수목원이다.  특히 씨드볼트라는 영구 식물 종자 보존 시설은 세계에서 노르웨이와 한국에만 있는 시설이며 한국의 시드볼트는 주로 야생종자를 보존하고 있고 노르웨이는 현존하는 종자를 보존하고 있어서 성격이 좀 다르다고 한다.  시드볼트는 촬영도 금지되어 있는 국가보안시설이다.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와 소백산탐방원에 7월 말에 다녀온 후 거의 4주만에 다시 경북 봉화군에 가게 되어 올해는 경상북도와 인연이 깊다.  풍기 ic까지 가는 길까지도 같아서 새삼 놀랐다.  수목원에 가기 전에 봉화군 춘양면에 소재한 봉화산사에 들렀다.  절 마당에 연을 키우는 못을 여섯 개를 만들어 연잎이 풍성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때늦은 연꽃이 한 두 송이 피어  연꽃 향이 은은하게 절 마당을 그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절은 사람의 기척이 없어도 아담하고 정갈한 대웅전에는 촛불이 부처님 앞에서 두 개가 양쪽으로 빛나고 있었다.   

백두대간수목원의 알파인하우스, 중앙아시아관, 동북아시아관은 수목원의 여러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백두산, 한라산, 독도의 자생식물을 그대로 옮겨놓아 보전하고 있다.  그중 진시황제가 보낸 사신들이 불로초라고 가져갔다는 시로미의 검은 열매. '시로미'라는 식물은 매우 독특한 생김새였다. 침엽수처럼 생겼으나 긴 줄기식물로 땅에 누워서 자란다.  검은 열매는 시고 달아서 제주 사람들이 시로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외씨버선길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수목원 둘레길을 걸으면서 춘양목(춘양면의 소나무)를 즐길 수 있다.  둘레길은 임도(林道, 신림을 가꾸기 위해 만든 길)로 맨발 걷기도 가능하다. 지금은 한창 칡꽃이 필 때라서 자줏빛 칡꽃이 비를 맞고 수양버드나무 아래에 가득 떨어져 있어서 누가 보면 수양버드나무의 꽃인 줄 알겠더라. 

 

수목원이 워낙 넓어서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며칠 걸릴 만한 넓이다.  그러니 트램을 이용하면 15분 만에 수목원을 두루 들러서 호랑이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  거기서 내려서 호랑이를 만나고 주변을 돌아보다 다시 트램을 타고 내려올 수도 있다.  트램을 타고 가는 길에 마편초, 마타리, 핑크뮬리, 상사화 군락지 등을 만날 수 있다. 성질 급한 벌개미취도 벌써 많이들 피었다. 

 

최고로 덥다고 연일 떠들어대는 TV의 방송을 무색하게 하듯이 처서가 지나자 놀랍게도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한기가 느껴진다. 22도까지 내려갔다.  비가 내린 덕분에 한낮 기온도 27도에 머문다. 봉화는 도시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 거의 '강원남도'라고 불릴 만큼  오지의 느낌이 강하다.  문명의 그림자가 멀어서인지 가을이 먼저 느껴지나 보다. 처서(處暑, 더위가 그친다)는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인데 조상들의 지혜로운 관찰력에 한번 더 놀란다. 

다들 이상 기후 현상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에 나 나름대로 처서가 지나도 더운 이유를 찾았다.  봉화는 27도,  강원도 영원을 거쳐 충북 제천을 지나 음성에 이를 때 까지는 29도, 경기도 안성을 들어서니 30도를 넘어선다.  안성이 수도권인 이유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와 아파트와 건물이 가로막는 바람길,  각종 열기들이 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는 거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열기가 상당하다. 

 

한국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님을 매번 여행할 때마다 실감한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 죽으면 씨드볼트가 무슨 소용이야? 영화에서 처럼 최후의 생존자 남자와 여자가 와서 시드볼트를 열 거예요.  아니면 우주인이 와서 열겠지요.  월이라는 영화 있잖아요. 시드볼트(종자금고)와 시드은행(종자은행)이 다른 점은 시드볼트는 종자를 보존만 하고 매년 활력검사를 통해 정상적인 씨앗을 유지한다는 점이고, 종자은행은 종자를 수집하고 나눠주는 일을 한다.  어떤 형태로 올 지 모를 노아의 홍수를 대비하는 일을 한국이 하고 있다. 한국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