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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건너뛴 삶> 본문

읽히는 시

박노해 <건너뛴 삶>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2. 5. 22:44

​건너뛴 삶   

                             박노해

 

오늘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은

시간과 함께 스스로 물러간다

쓸쓸한 미소이건

회한의 눈물이건

 

하지만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본질적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담요에 싸서 버리고 떠난 핏덩이처럼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선다.

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빛 회한으로

 

나는 내 인생의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을 건너뛰고 달려왔던가

그 힘없이 울부짖는 핏덩이를 던져두고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성공했기에 행복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성공을 위해 삶을 건너뛴 자에게는

쓰디쓴 삶의 껍질밖에 남겨진 게 없으니

-시 전문-

 

 고미숙의 <동의보감> 360쪽에 인용한 시다.  생로병사를 모두 겪어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일진대 무엇을 위해 건너뛴 삶을 사는 인생에서 결국 우리는 그 건너뛴 삶과 마주하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천상처나 유아독존!  지구나이 50억 년이라면 그중 첫 번째 인간이 바로 나이고,  이후 50억 년 동안에도 없을 나라는 존재, 우주 탄생이라는 빅뱅의 결과로 발생한 산소, 탄소, 수소, 질소 등의 원소와 초신성의 폭발로 인해 칼슘, 마그네슘 등의 무거운 원소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지구상의 생명체 중 으뜸이라는 인간이 바로 나다. 그런 인간이 시간에 쫓기고, 돈에 쫓기어 자신의 몸의 변화도 알지 못하고, 삶을 건너뛰면서 행복을 좇고 있다.  "성공해서 행복해요."라는 말,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들을 건너뛰고 얻은 성공이니 그건 껍데기가 아니겠냐고 묻는다. 

  

 요즘 대다수가 맞벌이 가정이다.  맞벌이하면서 핵가족으로 가정을 꾸리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부모는 젊고 혈기 왕성한 나이이며 아이를 기르는 일도, 가정을 꾸리는 일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같은 책 418쪽에 2010년 칠레 탄광에서 69일동안 갱도에 갇혔다 살아난 33명의 광부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연륜 있는 광부의 리더십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갱이 무너지자 연륜 있는 광부가 공포와 불안에 떨지 않도록 다독이고, 식사, 생활, 모든 면에서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이끌었다고 한다.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친화력과 깊은 신뢰였는데 그 신뢰는 나머지 광부들의 마음을 읽고 듣는 경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연륜 있는 광부 같은 리더십이 부모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무언가에 끄들리다 보면 무언가는 놓치는 법이다. 요즘 1,000권 읽기를 하느라 밖에 나가서 산책하는 시간이 줄었다. 한쪽을 선택하면 한쪽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 순간이다.  중요한 일을 건너뛰지 않고,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일이  나의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