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흙.바람 +나

[서평]개인주의자의 철학수업 본문

서평쓰기

[서평]개인주의자의 철학수업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3. 1. 17. 16:24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개인주의

  저자 마루야마 슌이치는 세계적인 석학과 함께 경제, 철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한 사람이다. 유발 하라리, 장 티롤, 가브리엘 마르쿠스 등과 협업을 하였고, <욕망의 자본주의>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도쿄예술대학, 와세다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욕망의 자본주의>, <욕망의 민주주의>, <14세의 자본주의>등의 책을 썼다. 

   책표지는 초록색을 바탕으로 흰색의 정육면체 물(무의식)이 있고, 거기 빙산의 일각을 설명하는 의식의 세계와 개인으로 살아가려는 한 사람이 배를 저어 가고 있다. "어떤 철학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라고 묻는다. 작가 나쓰메 소세키에서 출발하여 거울이론의 라캉,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프롬, 노장사상, 몽테뉴와 파스칼, 불교의 선과 무아, 다시 나쓰메소세키로 돌아오는 형식으로 목차를 구성했다.

  내가 거울에서 보는 저 사람이 나일까?'나는 과연 자유를 원하는가? 자유가 주어졌건만  대가와 책임, 근대 자본주의가 초래한 고독감과 거대 사회구조에 대한 무력감에 자유를 포기하기도  하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라캉과 에리히프롬의 철학으로 설명한다. 몽테뉴의 "세상은 영원한 그네나 다름없다. 이곳에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흔들린다."말을 빌어 개인주의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생각의 여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156p) 그 방법론으로는 노자의 "내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라"는 말을 인용한다.  사람이 나 중심으로 일한다는 것은 나의 이성, 감각, 쾌락의 세 가지 요소를 포개어 나는 물론 함께 일하는 타인에게도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을 만드는 방법을 뜻한다.(163p) 동서양의 철학을 망라하여 설명하는 저자의 철학 인식의 깊이가 상당하다. 파스칼의 팡세는 "인간은 자신의 고유함에 만족하기보다 타인의 관념 속에서 살기를 바라는 존재"(168p) 라고 비관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인간이 모두 모순적이고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비관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가능성 또한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자크데리다는 "한 인간은 하나가 아니다. 한 사람 안에는 다층적인 자신이 존재한다."라는 이론을 펼쳤는데 이는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이 세상 모든 사물이 늘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이론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쓰메소세키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결국 일본다운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깨닫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개인주의에 대해 '어떤 대상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개인주의자의 태도'라고 말하며 '제3의 눈'으로 볼 것을 제시한다.

  

결국 인간은 어딜 가도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여태껏 보지 못한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없애는 것이 곧 개인주의다. (215p) 이는 몰입의 지경에 이름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인생 최종 목표는 어떻게 한 명의 독립된 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며 이는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개인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이 가진 신체적 조건과 정신적 조건을 수용하고 끊임없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자본주의에 맞설 용기를 가지고자 하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종의 방법이 개인주의다.  한 사람이 오롯이 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으면 함께 하는 일도 가능하지 않다.  개인이 자유로울 수 없는 공동체란 '가짜 공동체'다.(헨리크 입센, 218p)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향해 강 상류로 올라갈 때 물길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 태어난 고향의 계곡을 찾은 연어만이 알을 낳는다.  인간이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개인주의를 지키는 일은 연어의 강 거슬러 오름과 다르지 않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이 책의 특징은 나쓰메소세키로 출발해서 동서양을 오가며 개인주의를 추구했던 이들의 철학을 소개하고 다시 나쓰메소세키의 <풀베개>를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쓴 작가는 100년전의 작가로 다수의 작품을 쓴 나쓰메소세키를 좋아하며 그를 흠모하는 사람이 분명하다.  벽돌 하나하나가 단단해야 집이 튼튼하듯이 개개인이 행복하고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어야 공동체가 고난에 맞서도 버틸 힘이 생긴다. 그러기 위해 개인주의를 추구하고, 개인이 자유를 누리는 만큼 대가와 책임을 다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사회를 위하는 길임을 역설하고 있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의 다른 사람은 피해를 보아도 괜찮다는 심리를 반영하는 행위인데 반해 개인주의는 개인을 존중하고 타인도 존중하되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우선한다는 점이 다르다.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일이 개인주의다.  개인주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