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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2022.6.7.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6. 7. 22:38

 예술은 길고, 나는 진화한다.

  경기도교육복지센터에서 매 학기 예체능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0년 가을은 글쓰기, 2021년 봄은 사진, 2022년 봄은 플루트를 배웠다.  코로나의 혜택으로 줌을 이용하여 연수를 진행하니 저녁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었다. 

 

  국내 총생산 (GDP) 세계 10위 권에 들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보도만 들을 때는 우리가 살만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돌아보니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문화 예술을 즐길 프로그램이 다양했던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오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센터에서 운영할 때는 퇴근길의 그 복잡한 교통체증을 견디고 1시간 넘게 운전을 하는 수고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회사에서 8시간 근무를 하고 난 후에 다시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동시간과 그 이동에 주어지는 노동을 감안하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로 인해 모임이 중단되니 자연스럽게 모든 연수도 화상으로 이루어졌고, 그 방법이 진화하였다. 그래서 나에게도 차례가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일주일 중 평일의 하루를 화상으로 2시간 정도 연수를 듣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당연히 보람 있는 일이 되었다. 

"코로나에 나는 무얼 했지?"

"아! 그래! 글쓰기, 사진, 플루트를 배웠구나."

 예술은 깊이를 요하는 활동이기에 그저 내가 배운 12주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접해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글쓰기는 이미 블로그,  브런치를 운영하는 분도 있었다.  강사님은 교육부 등 다양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활동을 했던 분이라서 그런 내용들에 대한 안내도 받았고,  장르별로 경험할 시간이 주어졌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글쓰기를 배우고, 그때 서평 쓰기를 처음 접했다.  나의 블로그 쓰기도 그때 글쓰기 수업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햇수로는 3년째 접어들었고, 500개 넘게 글을 쓰고 있다.  글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사설을 찾아 읽고, 글쓰기에 관한 책에 관심이 많아졌다.  유튜브에서도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 있으면 눈이 번쩍 뜨여서 보게 되었다.  정희진, 강원국, 서민, 고미숙 등의 작가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제는 글쓰기가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사진은 이미 DSLR 사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가지고 다니기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가방 속에만 있었다. 그런 사진기가 세상을 보게 된 게 사진반 수업 덕분이었다.  가족 여행을 갈 때 가지고 가서 찍기만 하고 카메라 살 때 준 디스켓이 용량이 적으니 더 큰  걸로 바꿔서 그 안에 몽땅 저장만 해 두었다. 또,  보정이라는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맘에 들면 쓰고, 맘에 안 들면 지우기 일쑤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보정을 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가장 중요한 건 사진은 빛과 그림자의 예술이라는 점이었다.  그림자가 사실 빛 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도.  배우고 나서 한동안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샅샅이 찍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카메라는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핸드폰이 얼마나 좋은가? 사진을 가볍게 찍고, 보정도 수월하고 컴퓨터와의 연결도 수월하니 말이다.  이제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걸지 않고 핸드폰으로 찍는다. 다만 실력은 늘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을 안 배운 아들이 찍은 것보다 맘에 안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그냥 찍어달라고 말하면 된다.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혹은 이렇게 지나가는 분께 부탁해도 가로, 세로, 가까이, 멀리 이렇게 네 컷은 기본으로 찍어주기도 한다. 사실 결과물이 그리 맘에는 안들어도 이런 문화가 참 정겹지 않은가? 사진 기술이 늘기는 어려워 보인다. 

 

플루트를 난생 처음 들어 본 사람은 안다. 왜 이 악기가 이렇게 긴가? 다른 악기와 달리 가로로 들고 불어야 한다. 키를 눌러야 되니 손가락은 힘이 잔뜩 들어가고, 금속이라 미끄럽다.  거기에 고음 위주의 악기이다. 입술을 M자를 발음할 때의 입모양으로 만들어서 따뜻한 소리와 차가운 소리를 불어서 저음과 고음을 낸다.  12주 중에 첫 주는 코로나 확진으로 아플 때라서 쉬었다. 두 번째 수업부터 쫓아가려니 속도가 버거웠지만 부지런히 연습을 했다.  그러나 손가락은 제각기 놀고, 음은 목쉰 거위처럼 꺽꺽 소리를 낸다.  20명 가까이 시작했지만 중반을 넘어서자 절반으로 줄었다.  또 한 주가 지나자 7명이 되었다.  소리는 안 늘고,  요령은 늘었다. 손가락이 지탱해야 하는 부분과 입술이 닿는 부분에 의료용 테이프를 붙여서 마찰이 생기게 했다.  집에서 "끽끽" 연습하기가 부담스러우니 자동차에서 연습을 했다. 운전석에서 연습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인다. 뒷자리를 차지하고 안전벨트를 길게 늘여서 조수석 목 지지대에 고정한 다음 그 줄에 집게로 악보를 걸고 연습을 했다.  누가 보면 세계적인 예술가가 태어나는 줄 알겠다.  매번 연습곡을 녹음해서 강사님께 보내면 피드백을 해 준다고 했지만 실력이 안되니 한 번도 못 받다가 마지막 주에 녹음한 곡을 보냈다.  열 번 넘게 연습해서 두곡을 보냈더니 카톡으로 피드백이 왔다. 

"입술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부앙~ 소리가 나요. 입술에 힘을 빼고 한 번에 훅 불면 더 좋겠어요."

'하아~ 고음이 소리가 안난다는 지적에 입술에 너무 힘을 주고 불었더니 이젠 힘을 빼라네........"

 회사로 따지면 아마 경력 5년차 쯤 되는 후배일 텐데 그런 강사님께 꼼짝없이 피드백을 받고, 배우다 보니 더 열심히 연습했나 보다. 그래도 12주가 지나고 나니 이제 취미 악기로 플루트를 꼽게 되었다.  쉬는 날,  베란다에 앉아서 플루트를 분다. 시원한 음색으로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부는 나를 기대한다. 

 

다음 학기에 또다른 예술을 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예술에 다가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분명 새로운 분야를 선택하겠지만 그 또한 나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하게 해 주는 기회가 될 거다. 그래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회를 기다린다. 나는 진화하고 있다.  예술의 깊이는 깊어서 배울 것이 끝이 없다. 다만 접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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