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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라운(THE CROWN)-토론의 방법을 배우다.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2. 4. 24. 22:14

대화법을 눈여겨 보다.

더 크라운(THE CROWN)-2부 5화 "마리오네트"

 

넷플릭스에서 THE CROWN을 두 번째 보고 있다. 

2부 5화 '마리오네트'를 보다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어서 내용을 옮겨본다. 

대화법의 정수를 찾았다. 

 

 때는 1958년이다. 1952년 선왕의 죽음으로 느닷없이 왕위에 오른 후 6년 만의 일이다. 

 

출판사 편집장인 올트링엄경이  여왕의 재규어 공장 방문 시 읽은 연설문의 내용과 군주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된다. 

"왕족의 첫째가는 의무는 영감을 주는 것이다. (월터배젓)"

신문에서는 '여왕과 군주제를 조롱. 고상한 척 우쭐대는 여왕이라고 모욕함.' 등으로 대서특필하여 팔려나갔다. 

이 문제에 대해 여왕의 첫 번째 대답은 "그 말에 동의하세요?"였다. 

 

그러나 올트링엄경이 TV쇼 진행자인 데이와의 대담을 지켜본 후 여왕의 마음은 달라진다.

그의 말들이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대담의 내용이다.  내가 흥미롭게 본 점은 올트링엄경의 말이다.  그의 주장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주장은 들어있지 않다. 영국의 정치와 군주제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결론임을 보여준다. 

 또 말이 사람을 향하지 않고, 그 역할에 가 있다.  1958년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22년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적용하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말이다. 

(데이)  전 세계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왜 여왕을 싫어합니까?(올)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예술비평가는 예술을 비평하겠어요? 전 군주제를 지지하며 영국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 입헌군주제라고 믿습니다.

(데이) 그렇습니까?

(올) 전 군주제가 명료하다고 봅니다. 상징적 국가 원수가 이기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정치인의 잇속 챙기기를 초월하는 것이니까요. 그들은 사무실에 들락날락할 뿐이죠. 리어왕이 잘 묘사했듯 달에 의한 밀물과 썰물처럼요. 군주제가 굳건해지면 이런 문제들을 뛰어넘어 사회를 통합할 수 있습니다. 사회 풍토를 확립하고 국가와 국민성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 거죠. 그러나 현재는 군주제가 그 역할을 안 하고 있어요.

(데이) 군주제가 잘하는 일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올) 그건 아닙니다.

(데이) 여왕폐하가 초인적 능력을 소유하길 바라세요?

(올) 초인이 되어야 유연 해지는 건 아니죠.

(데이) 경의 사설을 보면 경이 바라는 여왕은 재치 있고 탁월한 연설가에 유명 연예인이 되는 거군요. 성실하고 헌신하는 군주이자 어머니이길 바라고요.

(올) 저는 대중 앞에서 좀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거죠. 여왕의 연설은 솔직히 말해 목에 걸린 가시 같아요. 숨 넘어갈 듯 들리죠. 연설 내용이 청중에게 무심하고 타성에 젖어 있었어요.

(데이) 그렇지만 여왕이자 영국교회의 수장인 것이 쉽고 단순한 일은 아니죠. 신격 존재이자 인간이니까요. (올) 그러나 평범하다고 해서 무난하거나 무능해선 안되고 쉽게 잊혀도 안되죠.

(데이) 외람된 말씀이지만 작은 출판사 편집장보다 확실히 힘든 일일 텐데요.

(올) 그렇습니다. 폐하의 임무는 수행 불가능해 보이죠. 평범하면서 비범해야 하고 신격 존재이자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평범하다고 해서 무난하거나 무능해선 안되고 쉽게 잊혀도 안되죠. 

(데이) 그게 누구 탓이라는 거죠? 여왕의 신하들이요?

(올) 궁이 잘못하고 있고 그 조직이 잘못되었다면 조직의 수장을 책망할 수밖에요. 

(데이) 여왕 말씀이죠?

(올)네, 수장만이 간신을 쳐낼 수 있으니까요. 수장이 고용한 자는 수장만이 자를 수 있어요. 그들이 나쁠 수 있어요. 몇몇은 정말 형편없고 끔찍하지만 그 책임자는 그들이 아니라 여왕이에요. 어쨌거나 그들도 피고용인이니까요.

(데이) 군주를 향한 인신공격은 끝나지 않는군요. 

(올) 이렇게 말씀드리죠. 군주제를 비평하고 폐하의 인신을 공격하는 건 제게 아무런 기쁨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건 2차 세계대전과 수에즈 위기 이후 영국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영국의 군주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쟁 전 일과를 반복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여왕과 그 신하들이 가진 관점은 군주제가 지배하고 공화제는 예외라는 거였지만 오늘날에는 공화제가 지배하고 군주제가 예외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데이) 오늘 인터뷰를 마쳐야겠네요......

 

이 일이 있은 후 총리가 여왕을 찾아와 제안한다. 그러나 총리는 올트링엄경이 말하는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에 불과했을 뿐 이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총리) 이집트, 불가리아, 이탈리아, 튀니지 등 군주제를 포기하고 공화제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를 황색으로 보지는 않는다. 되도록 빨리 제압했으면 한다.

여왕) 방법은 무엇인가?

총리) 올 트링엄 경은 불이니 그 불을 끄는 것이다.

 

궁의 부보좌관인 차트리스경의 초청으로 올트링엄경을 궁으로 오게 한다.  그러나 차트리스경과 만나기에 앞서 여왕은 부보좌관의 방에서 올트링엄경을 만나 독대한다. 차트리스대령은 여왕을 만난 일은 공식적으로 없던 일이며, 올트링엄경이 주장한다해서 궁은 부인할 것이라고 말한다. 

퀸)내 목소리는 알아듣겠어요? 숨 넘어가거나 목에 가시가 걸린 거 같지 않나요?(올트링엄경의 말을 짚고 넘어가는 장면이다) 내 어떤 점을 바꾸고 싶나요?

올) 폐하께서 달라지시길 원한다기보다 달라진 걸 인정하시길 원하는 겁니다. 

퀸) 뭐가 달라져요?

올) 모든 것이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셔야죠. 권위의 시대는 끝났으니까요.

퀸) 권위가 사라지면 뭐가 남나요? 무정부 상태요?

올) 동등함요.

퀸) 대응사격을 못하는데 어떻게 동등하죠?

올)하셔도 돼요. 다만 역사 속에서 자국민에게 대응 사격을 해 이득을 본 군주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퀸) 그런데 이 군주에게 이득이 될만한 일은 생각해냈다는 말이군요.  

올) 그렇습니다. 

퀸)그리고 지금 그 군주는 미안한 말이지만 실패한 정치인이자 일개 언론가에게 자기 길에 관한 조언을 받네요. 

올)이 상황이 제게도 황당하긴 마찬가집니다. 

 

올트링엄경이 가방에서 목록을 꺼낸다. 목록에는 제시하는 것 3가지, 폐지할 것 3가지가 적혀있다. 

 

퀸) 폐지할 것부터 시작하죠. 

올) 1) 사교계의 입문 파티를 없앤다. 계층에 따라 만나는 건 불평등이다. 

    2) 왕가에서 이혼한 자를 좀 더 자유롭게 해 주세요. 교회의 법은 매몰차다. 영국법에도 어긋난다. 

    3) 시종의 전체 세대교체를 원한다. 구닥다리 시종은 모래 속에 머리를 묻은 타조다. 궁이 바깥 세계와 함께 진화하는 걸 막고 있다. 

(퀸) 그 타조들은 군주제의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바로 전통의 보존이다. 

     그러면 개시할 것은 무엇인가?

올) 1) 문을 열어라. 도개교를 내려라. 폐하를 알려라. 

퀸) 나는 알려지기 싫다. 

올) 2) 성탄절 연설을 TV 중계하라. 국민에게 더 뚜렷하고 친근하게 다가가세요. 

   3)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현실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 노동자들을요. 궁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더 포용하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세요. 평범한 사람들도 폐하를 알게 해 주세요. 

 

그 해 1958년 크리스마스 인사는 녹화한 내용을 TV 중계했다. 여왕의 인사말 중 일부분이다. 

"........ 천로 역경의 몇 구절을 읽겠습니다. 큰 고난을 겪으며 이곳까지 왔습니다만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제가 받은 모든 고통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 검은 제 순롓길의 뒤를 잇는 자에게 주고, 제 용기와 기술은 합당한 자에게 주겠습니다. 제 상처와 상흔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는 제가 그분의 전쟁을 치렀다는 증거이니 그분이 제게 상주실 것입니다....."

 

6개월 후 일반인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궁에 초대되었다. 버스기사, 은행원, 여성 경찰, 핵주먹 등이다. 이 연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선왕의 대비이자 여왕의 어머니가 말한다. 어머니와 퀸의 대화다. 

어머니) 현실에 발맞추고 우리를 민주화하는 거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혹독하게 흘러가는 세월에 쏘이고 물려서 야금야금 떨어져 나가. 우리의 권위와 절대주의 신성한 권리가 말이야. 이나라 군주제의 역사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치욕과 희생을 감수하고 양보만 해 왔어. 처음엔 남작, 다음엔 상인, 이젠 언론인까지 공격하니 우리가 왜 그렇게 예절과 의전과 전례를 따지겠어. 남은 게 그게 다잖아. 갑옷의 마지막 조각만 매달려서는 통치에서 군림으로 그리고.... 

퀸)그리고 뭐요?....

어머니)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 마리오네트.  가자, 장갑 끼고.

궁내 차관에게 중간중간 손님들 자리 이동하게 했으니 지루해져도 걱정마라. 길어야 15분일 거다. 

 

2022년 한국에 사는 우리는 어떤가? 새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와 용산시대를 열겠다고 한다. 공군참모총장의 공관을 거처로 옮기고 국민들과 가까이 다가서겠다고 한다. 영국에서 64년 전에 궁에서 시도한 내용과 한국의 정치 수장이 시도하는 내용이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올트링엄경의 제안 6가지는 모두 실현되었다. 4년 후인 1963년 올트링엄경은 칭호를 떼고 이름으로 불렸다. (존 그리그, 1924-2001)

 여왕에게 요구한 '권위 내려놓기,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동등함의 실천'을 본인도 '경'의 칭호를 내려놓음으로써 실천한 셈이다. 

 

 영국에서 64년 전에 여왕에게 제안한 올트링엄경이 있었다는 것은 당시 여왕과 궁에는 불유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군주제를 유지하고 국민들과 함께 가기를 택했기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아직도 직위를 유지하고 군주제도 굳건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내가 찾은 것은  국가의 미래를 지향하는 공정함의 논리와 지혜로운 말솜씨로 세상을 바꾼 올트링엄경의 대화다. 뉴스쇼 진행자와의 대화와 여왕과의 대화 속에서 올트링엄경이 보여준 대화의 방법은 토론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왕으로서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엘리자베스2세(더 크라운 영화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