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흙.바람 +나

[시 읽는 수요일 2026-36주] 타인(정호승) 본문

카테고리 없음

[시 읽는 수요일 2026-36주] 타인(정호승)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6. 9. 2. 11:18

타인

내가 나의 타인인줄 몰랐다.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공연히 나를 힐끔 노려보고 가는 당신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내가 내리기도 전에 먼저 타는 당신이
산을 오를 때마다 나보다 먼저 올라가버리는 산길이
꽃을 보러 갈 때마다 피지도 않고 먼저 지는 꽃들이

전생부터 아이들을 낳고 한집에 살면서
단 한 번도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고 말하는  당신이

나의 타인인 줄 알았으나
내가 바로 당신의 타인인 줄 몰랐다

해가 지도록
내가 바로 나의 타인인 줄 몰랐다.

ㅡ정호승ㅡ

내가 바로 나의 타인이다....?!
내가 원하는 삶인 것만 같아도
오래 전부터 나를 규정하는 말들이 있어 나를 앞선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나다.
공자의 한 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시키지 말라.'


성경의 한 줄


'너희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고대 그리스신화의 한 줄


'나그네를 대접하고, 정의를 지키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인류 공통의 황금률은 맞닿아 있다.

 

나와 남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