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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수요일

[시 읽는 수요일]2026-9주 <설일(雪日)>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6. 3. 4. 00:40

설일(雪日)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 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김남조 시인의 시 <설일> 전문-

 

   혼자라고 생각되어도 하늘 아래에 있으니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시인의 시선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느껴본 사람만의 조용한 고백이 숨어 있다.  위에서 아무 말없이 내려다보는 하늘, 그 하늘은 시시각각 변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지요. 시인은 눈 오는 날에 이 시를 썼군요.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바람도 불어서 갈 곳 없이 서 있는 날, 외톨이처럼 여겨지던 날에 함께 있어준 건 하늘 밖에 없던 날. 그런 날이 있었던가요? 있었지요. 그런 날이. 창자 끝까지 외롭게 여겨지던 날. 백척간두에 선 심정이던 날. 

   길었던 추위가 반쯤 물러나고 화단 끝자락에 서있는 동백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바람과 비와 눈에 시달려서 상처가 났더라고요. 그래도 하나, 둘, 셋, 세어보니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피었어요. 오늘 햇볕이 따뜻했으니 또 한 둘은 피었겠지요. 아마 이 밤에 동백꽃을 피우고 있을 거예요.  눈 오던 날의 외롭던 기억도 그 동백꽃에 새겨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