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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글쓰기-물.흙.불.바람/2025 ~글쓰기

마음이 편해지는 주문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5. 12. 20. 09:06

 

 수다를 떨다 보면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해야 하고, 하다 못해 20년 전에 같이 근무한 사람에 대한 흉을 만날 때마다 할 때도 있다.  같이 사는 가족에 대한 험담도 어느 정도는 해 주어야 대화가 되는 모임일 때도 있다. 그런 만남은 끝나고 돌아 나와 30분 넘게 운전하고 오는 도중에도 말의 꼬리가 나를 따라와 찐득한 불쾌함을 털어내지 못할 때가 있다.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야!" 

"지금 회사는 나에게 과분해. "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입에 붙은 말이 있다.  지인,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설 때 개운치 않았던 뒤끝이 어느 순간에 깔끔하게 정리된 기분이 들었었다.  그 말의 뒤에는 험담도 붙을 자리가 없다.  그러니 대화의 자리가 유쾌하고, 뒤끝도 없이 정리된다. 말 한마디의 위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내가 한 말과 비슷한 내용을 책에서 읽었다. <인연>이라는 수필로 유명한  피천득 선생이 80세가 넘어 제자들에게 세배를 받았을 때, 제자들이 "선생님처럼 사모님과 평생 정답게 지내고 자녀들도 잘 키운 비결이 무엇인가" 묻자, 선생은 "부인이 나에게 과분한 사람이고, 자식들도 나에게 과분한 사람들"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과분(過分)하다는 말은 나의 분수에 넘친다는 뜻으로 자신의 처지를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지나치게 겸손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넘치게 주어졌다는 의미다. 피천득 선생의 제자들이 전한 후일담은 예상 밖의 대답이어서 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교육을 잘해서 자녀들이 잘 되었다. 내가 이러이러한 노력을 해서 부인과 정답게 지낸다. '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피천득 선생이 80세가 되었다면 은퇴하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인데도 많은 이들이 세배를 갔다는 것은 선생이 평소에도 주변을 편하게 하는 성품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결이 '나에게 과분해!'라는 생각에서 찾아온 이들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리라. 

 

 내 말의 선택이 누군가와 같았고, 아름다운 일화로 전해진다 하니 기쁘다. 마음이 불편할 때는 내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고, 상대가 내 마음대로 행동해 주지 않아서 일 때다. 그럴 때 마음을 편하게 하는 주문이 '나에게 과분해!'다. 내가 2025년에 찾은 주문이다.

 

 별 다를 것 없는 하루 하루인데 2025년을 마무리하고 2026년의 계획을 세우려고 보니 1년 전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없었다. 모두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응원하고 지지해 준 덕분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과분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