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수요일(시 큐레이터)
생명의 서(書)
시간에 색을 입히다
2020. 10. 21. 16:04
생명의 서
-유 치 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原始)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邱)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시 전문>
중학교, 고등학교때 공부하느라 들었던 시의 제목만 겨우 생각나는 그 시를 제대로 외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님이다.
기운서린 목소리로 구절구절을 읊어가는 최교수님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 있었다.
"나와 대면케 되리니"
철학의 시작과 끝은 "나"이다.
모든 일의
원인도
정답도
진리도
모두 내 안에 있다.
인생은 나에서 시작하여 나로 끝난다.
내가 외우는 시는 정현종시인의 '방문객'이다.